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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Jul 12. 2020

내가 중국어를 택한 이유

유 아 마이 데스티니

 처음 중국어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원래 영어를 엄청 좋아했다. 고1 때부터 이익훈 토익 책을 사다가 혼자 풀어 보는 걸 좋아했다. 물론 어려웠지만, 영어로 빼곡히 나열된 문제들을 보면 뭔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변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너무 많이 봐서 일까, 나만의 ‘무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그 당시에도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이미 원어민 수준으로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그렇게까지 넓게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일본어보다는 중국어가 아직 희소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중국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고1 여름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어 학원에 다녔는데, 처음으로 배운 문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니 쟈오 션머 밍즈(이름이 무엇입니까)?’ 언어에 이렇게나 리듬감이 넘치다니, 이 문장을 배우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끊임없이 이 문장을 되뇌었다. 두근두근 설레던 순간이었다.


중국 공원에서 자주 보는 광경

 이후 매 학년마다 적어내는 장래희망은 모두 ‘통역사’였다. 겨우 초급반, 중급반 수준으로 했는데도 꿈이 통역사였다니 지금 생각하니 귀엽다. 대학교 학과 선택도 주저 없이 중문과였다. 당시에는 중국어를 계속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좋아하니까 선택한 것이었다. 고1 때부터 계속 공부를 했기 때문에 대학교 1, 2학년 수준까지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되니 학과 공부가 수월했던 것도 계속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이 또한 어학연수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중국 서점 탐방

 그리고 이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순히 흥미와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시절엔 중국어를 좋아하면서도 중국 문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그래서 일본어는 노력 대비 쉽게 습득이 가능하기도 했다. 중국 문화에 이 정도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실력 향상이 더 빨랐을 것 같다.


중국 공원의 공개 중매 현장

 유학에서 돌아와 중문과 수업과 일문과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난 두 언어 모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두 언어 실력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는 결국 중국어였다. 예를 들어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두 언어 모두 교직 이수를 하는 중이라 둘중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의외로 주저 없이 중국어 교생을 택했다. 졸업 후 임용 고시를 준비할 때에도 잠시 고민은 했지만(당시에는 일본어 교사 TO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당연하다는듯 중국어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이후에 다시 중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면서 주전공은 중국어로 굳혀졌지만, 일본어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본 문학도 좋아해서 번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번역된 일본 문학이 많은 것은 중국어 전공자로서 부러운 부분이고 중국 문학도 더 인기가 많아져 번역서도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점점 팬시해지는 중국 서점

 이렇게 여러모로 난 두 언어 모두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중국어가 우선이 되는 것은 내가 두 언어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중국어는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일본어는 보다 가볍게 즐기는 태도로 대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난 중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보기 시작하는 순간 공부이자 테스트처럼 느껴져서 즐길 수가 없다. 문장 하나가 안 들리면 조바심이 들고 ‘내가 어떻게 저 문장을 못 알아들을 수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는 못 알아듣는 문장이 지나가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알아들은 문장에 대해 ‘오 이번에는 제대로 들렸다!!’ 하고 기뻐한다. 중국어는 내 직업으로서 당연히 더 월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큰데, 일본어는 잘하면 더 좋은 부수적인 부분이다.


 중국어는 내가 통역사라는 꿈을 갖게 해 준 언어다. 통역사라는 꿈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지내던 대학교 4학년 때 한 교양과목에서 개성 있는 명함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다. 당시 내 꿈은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제로 통역사 명함을 만들었다. 통역사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니 구강 청결제가 자주 필요할 것 같다고 명함 뒤에 구강 청결제를 붙이기까지 했다.;;

 은연중에 난 항상 통역사를 동경했나 보다. 중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우연에 가깝지만, 중국어를 알게 된 후에는 운명처럼 중국어 통역사의 길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중국어는 운명이자 내 꿈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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