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큰 번역이 끝났다. 45일 동안 진행하던 어렵고 양 많고 단어도 잘 안 찾아지고 문과생인 나에게 유난히 어려웠던 공학 박사 논문이었다.
양 많은 거야 뭐 여러 번 겪었던 일이고 차분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하게 되어 있어서 이젠 몇 백 장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한다.
이번에 유난히 어려웠던 건 단어가 너무 안 찾아지는 것이었다. 정확한 한국어 대응어를 찾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인터넷만 뒤지면 웬만한 건 다 찾아지는 세상인데도 그런다.
이렇게 찾다 찾다 안 될 때는 결국 동료들에게 SOS를 보낸다. 이상하게 온갖 사이트를 다 뒤진 것 같은데도 동료가 찾아보면 뚝딱 하고 답을 나올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번역을 하다 찾을 때는 한 가지 생각에 얽매여 서칭을 하다 보니 놓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번역 내용에 관련된 전문가를 찾아줄 때도 있다. 전에 삼국지 관련 번역을 한 적이 있는데, 도무지 모르겠는 내용이 나와 이곳저곳 도움을 청하다가 결국 삼국지 마니아라는 친구의 아버님에게까지 연이 닿았다. 문제는 바로 해결되었고, 어려운 부분이 지나가고 한숨 돌리니 이 상황이 조금 웃겼다. 도움을 청했던 친구는 중국인 친구였고, 평생 전혀 연이 닿을 일이 없을 친구 아버지와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니…
이럴 때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번역을 하는 데도 온 마을의 통번역사(^^;;)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정성이 담긴 내 번역본, 꼭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을 빌려 나의 동료 통번역사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