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챙기는 건 나뿐
세상에 돈 달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만큼 불편하고 껄끄러운 게 없다. 회사에 다니면 제때 월급이 나오지 않는 한 직접적으로 돈 얘기를 꺼낼 일이 없지만, 프리랜서는 조금 다르다.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할 때마다 요율을 정해야 하고 전체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요율은 정해져 있지만 번역은 난이도나 추가 감수 같은 게 추가될 수 있고 통역은 통역 시간이 애매할 경우 서로 요율을 어찌할지 정해야 한다.
그래도 대부분은 시작 전에 어느 정도 이 일의 대가가 얼마가 될지 정해지는데, 그렇지 않고 도중에 내가 돈 얘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 이따금 생기곤 한다.
캣툴을 사용한 대량 번역을 할 때의 일이다. PDF인 원문을 캣툴 작업이 가능한 파일로 변환을 해서 내게 보내왔고 그 파일을 기준으로 글자 수를 따져 전체 비용이 정해졌다. 해당 업무에 대한 작업 의뢰서와 PO는 이미 발행이 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PDF 파일에는 있는데 캣툴 작업 파일에는 없는 문장이 꽤 발견됐다. 아마 변환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문장으로 인식을 못해 누락된 것 같았다. 워낙 대량 번역이라 몇 문장 정도야 그냥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메일을 보내 처리를 해달라고 연락하고 또 답장을 받고 하는 것도 귀찮고 해서) 누락된 부분을 PDF에서 복사해 워드 파일을 따로 만들어 번역본을 전달했다. 전달하면서 캣툴 파일에 누락된 부분이 꽤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파일까지 진행하면서 계속 그런 부분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하다 보니 나도 ‘아… 이것도 모으면 꽤 되는데 이걸 다 그냥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전에 누락된 부분을 서비스 차원(?!)에서 그냥 번역해 전달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맙다거나 그 부분을 추가해주겠다거나 하는 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대로 계속하기가 싫어졌다. 메일로 이런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니 따로 발주서를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회신이 따로 없다. 나도 그래서 캣툴 파일만 번역해서 넘기고 누락된 부분은 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내가 너무 쪼잔한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고 싶었다.
며칠 후, 담당자는 아무렇지 않게 누락된 부분이 있으니 번역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메일에 썼던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하며 누락된 부분에 대한 발주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제야 알겠다며 발주서를 보내고 번역을 요청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누락된 부분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었는데도 뭔가 찝찝하다. 그냥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몹시 불편했던 것 같다. 원하던 대로 받든, 받지 못하든, 사용자가 알아서 비용을 챙기고 정해진 만큼의 사용료를 지불하면 이런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내가 요구해야 한다.
경제 활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왜 매번 이렇게 불편할까. 아니 애초에 우리는 자당 요율로 벌어먹고사는 직업인데, 누락된 부분의 번역을 자연스럽게(?!) 공짜로 요구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데도 그걸 요구한 내가 이렇게 불편해야 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프리랜서의 권리는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 대변해주는 사람도 없고, 가만있는다고 챙겨주는 곳도 없다. 연차가 조금 더 쌓이면 이런 걸 말하는 것도 지금보다는 지연스러워질까. 아직은 돈 얘기가 어려운 프리랜서 2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