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May 20. 2021

우리 집은 정글

바 선생과의 결투

막내를 재우고 드디어 육퇴.  

혼자 캔맥주 하나 들이영화 보는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이다.  

혼자만의 파티(?)를 마치고 막내가 누워있는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선 순간,

구석에서 맣고 낯선 무언가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가 그쪽에 뭔가를 두고 잊었던 것이 있나 생각해봐도

도저히 기억이 없다.

아이가 깰까 휴대폰 불빛으로 조심스레 확인해본다.  


어두운 붉은빛을 띤 거대한(크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곤충이

더듬이를 움직이며 나를 주시하고 있다.  


바퀴벌레는 아닐 거야.  

바퀴벌레가 저렇게 크다고?

에이~ 아니겠지 설마.

일단 죽이자.  


모든 곤충을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의 ㅇㅇ킬을 부랴부랴 찾아 거대한 녀석의 등에 정통으로 뿌려댔다.

놀란 녀석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약을 맞고도 멀쩡하게 뛰어다니다니.  

크기가 커서 잘 죽지도 않는가 보다.  

침대 밑으로 도망간 녀석은 침대 반대편으로 나왔다.

난 다시 정통으로 약을 명중시켰다.

약을 맞고 치명상을 입는지

큰 몸을 이리저리 꼬며 바닥을 왔다 갔다 하더니  다시 침대 밑으로 들간다.  

하아. 침대 밑에서 죽으면 어떡하지.  

그 걱정은 곧 기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 지나지 않아 침대에 맞닿은 벽에 나타난 그놈은

보란 듯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천정까지 올라간다.

벽에서 천정으로 갈 때는  큰 몸뚱이가 ㄱ자로 휘어진다.

웹툰으로 그리면 나는 거대한 벌레와 싸우는 전사

저 놈은 집에 기생하는 괴물로 그리면 딱이겠다 싶다.


저 놈이 천정에 붙어 있으니 약 뿌리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자고 있던 막내를 다른 방으로 대피시키고

다시 그 녀석과 대치했다.

천정과 벽 두 개가 맞붙는 모서리 구석에서 잠시 쉬는 놈.

난 마치 워킹데드의 주인공처럼 있는 힘을 다해 약을 발사했다.

수십 번의 약 공격을 받은 그것은 드디어 바닥에 여섯 다리를 쫙 뻗은 채 죽음을 서서히 맞았다.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도 계속해서 경련을 해댔다.  


한참이 지나 경련이 멈췄다.

드디어 죽은 듯싶다.


저 벌레가 도대체 무엇일까.

색해보니 미국 바퀴벌레란다.  

오 마이 갓.

바퀴라니.  

바퀴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는 생명체 아니던가.

물 한 모금만 먹어도 보름 이상을 산다고 하며,

어떤 약을 먹고 죽은 바퀴벌레에게서 태어난 바퀴는

그 약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그 약으로는 죽일 수 없다 한다.

어쨌든 난 살아있는 화석과 싸워서 이겼다.  


그 날 이후 빈 방에 불 켜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후로도 같은 종류의 바퀴를 두 번 더 보았다.  


바퀴벌레 퇴치를 의해 방역업체에도 상담받고

검색도 많이 하여

가장 잘 듣는다는 약을 구석구석 놓고 뿌리고

집 주변에 살충제도 들이부었더니 며칠 보이지 않는다.  


퇴치에 성공한 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한 달 살기 이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