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 마'라는 말을 힘겹게 삼키자
마치 날카로운 쇠를 삼킨 듯
가슴 이곳저곳이 긁히며 깊숙이 아려왔다.
잿빛회색의 도시는
내게서 너라는 기억을 데려간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발걸음이
한 발자국씩 멀어져 갈수록
떴다 감았다 하는 나의 두 눈에 차오르는 눈물이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희미해지는 내가 싫고,
희미해지는 네가 싫다.
잡으려 해도 쥐어지지 않는 공허함과
침묵을 양손에 붙잡고 돌아선다.
그런 내 옆에는
나를 언제까지고 보드랍고 다정하게 바라봐주는
어제의 네가 곁에 있다.
붉은빛으로 타들어가던 태양이
수평선 위에 걸치며 노랗게 빛바래진다.
표정 없는 도시.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생기 없는 시멘트 건물의
유일한 목소리가 돼주었던 창문이
하나 둘 닫히며 밤을 초대한다.
흐릿해지는 태양은 어느덧 달의 그림자가 되고,
흐릿한 사랑의 기억만큼이나
깊어지는 밤은 나를 외롭게 한다.
낮과 밤, 그 애매모호한 시간은
거짓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진실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하는 틈새의 입자.
그 속에서 사랑이란 거짓의 옷을 벗어두고
사랑이라 부르던 것은 떠나갔다.
가장 두려운 순간의 한가운데 버려진 나는
차마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 채
주저앉아 잔뜩 움츠린다.
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