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연습, 사는 연습
아이를 끌어안고서 뒤뚱뒤뚱 걸어서 욕실로 가기
아빠한테 폭 안기던 아이가 너무 크게 울어서 나 역시 큰 눈물이 났기 때문인데, 꼬맹이한테 다 큰 아빠가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
그렇게 서럽게 울다가도 금방 킥킥 웃는 아이를 먼저 얼굴 씻게 하고, 그러는 사이에 아이 몰래 내 눈물을 씻었다. 우리 둘은 거울을 보았다. 눈이 퉁퉁 부었다.
아빠는 길게 편지를 썼었다. 읽었냐고 물으니까,
아이는 다 읽었다고 말했다.
아빠의 편지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확신하였다.
길고 긴 편지를 읽었다면 아빠에게 무반응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잘 이해 못 할 때도 많고, 어른들은 아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말을 잘 못할 때가 많고,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어른의 말소리를 아이들은 지루해하기 일쑤였다.
내 방법 중에 하나는 하고픈 말을 짧게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고, 길게 길게 쓸 때도 가끔 있지만 천천히 끝까지 다 읽지 않는다는 것을 빤히 알지만 모른 척하는 것인데, 오늘의 방법은 아빠가 보낸 편지글에 네가 아무런 답장이 없었으니까, 때늦은 대답 대신에 아빠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말했다. 아빠가 뭐라고 썼는지 지금 도무지 기억 안 나니까 한번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딱 한 번만 그렇게 해보자고 사정했다. 다행히 아이는 ‘그래 좋아. 내가 큰 소리로 읽어볼게! 잘 들어!‘ 하였다. 그러더니, 다섯 번째 문장에 이르러서 목소리가 살짝 차분해지더니 여덟 번째 문장을 지나면서 울기 시작한다. 문장은 계속 이어지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아직도 읽어야 할 문장이 많은데 울음소리에 뭉개지는 발음으로 웅얼웅얼하며 큰소리로 끝까지 다 읽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운다. 아빠 아빠 하면서 크게 운다. 나는 모로 누워서 자는 척했다. 아이가 울다가 울다가 아빠한테 온다. 누워있는 내 몸에 자기 몸을 묻힌다. 자기 울음을 묻힌다. 슬픔과 슬픔을 아빠 몸에 묻힌다. 아이가 우는 모습은 내 가슴을 찢는다. 찢어진 내 가슴에서 눈물에 터진다. 눈물이란 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가슴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진동이고 흔적이었다. 나중에는 물처럼 자라나서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질 때 쭈욱 짜내듯이 목을 타고 올라와서 눈동자를 적시고 뺨으로 흐른다.
미안하다. 어른들이 잘못한 거다.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한 편의 어른 곁에서 이만큼 잘 자라나는 아이에게 어른은 아주 크게 숨죽인다. 소리 내어 울 자격도 없으니까. 소리를 낸다는 것은 마음의 진동을 건네는 일이고, 그 진동의 끝에서 나는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었던 때를 다시 기억해 낸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울지도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냈다가는 나도 참지 못하고 터질까 봐 아주 살살 말해주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