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읽으며 한 번은 짧게 한 번은 길게
축하할 소식과 웃고 있는 사진들을 보며
오래도록 정든 사람에게
한 번은 길게 한 번은
한 번씩은 짧게
나는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어둠 속에서 헤맨다라고는 차마 말 못 하고 말았으나 아침부터 정오가 지날 때까지 불쑥 오늘도
나는 몇몇 안부인사를 나누고 진심 어린 축하의 말과 함께 나와 통화하는 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빌었으니 내 마음이 도로 꽉 찼다 타인에게 평온을 기원할 때 왜 내 마음에서 기도 같은 노래가 스치고 조금씩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일까?
물론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였다 좋아하는 노래마저 싫어질 때가 있는데 질리도록 길게 쓰고 쓰고 또 이러는 것일까? 안그런다안그런다해놓고선 또
찾아가 보고 엎드려
살면서 만나본 적 없는 고인의 얼굴을 한번 보고 길게 엎드려
생전처음 찾아온 이의 말없는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심정을 어떻게 적었는지 확인해 보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아픔이 없는 곳에서
이제는 더없이 가볍고 편하게
이승에서 만난 고통과 절망을
바람처럼 날려 보내시고서
그저 쉬세요 아버지!
멀리서 이렇게 내 마음을 적어본다
라고 썼구나 쓰면서 울고 읽으면서 또 울었다
내가 아직도 숨을 쉬며 무언가를 먹으며 누군가를 만나며 무언가를 말하며 어딘가를 향하며 향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묵묵히 살아간다는 사실을 잘 감당하는 모습으로 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끼친 사람들에게 내가 고개 숙이고 있는 내 모양을 똑똑히 확인토록 해야 하고 내가 살면서 저기로 저기로 여전히 가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가면서 다 만나야 하기 때문이고 힘들다고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보내온 글과 말은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게 내 숙명이고 싫다 하지 말고 이곳을 다 지나가야 하는 일이 부족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겐 단지 그것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을 내 멋대로 살아오듯 하면
이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바닷가에 가서 그 넓은 풍경을 등지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등뒤로 흐르는 시간이 나를 앞질러 왔다가 다시 가던 길로 잘 떠나갔다 아무 일 없었으니 축복이었고
실컷 시원시원하게 노래하였으나 내 머리에서 뜨거운 태양빛이 팽팽하게 나를 태웠고 멀리 놓아둔 삶의 약속을 떠올리며 참아냈다
어제의 노랫말은 이러하다
[사막에 도착한 카알 랑그만의 노래]
약한 자 사라지고
강한 자 살아남는 법
강자의 이익이
약자의 손해
쓰러진 자에게 발길질이나
보태요
이기는 자만이 식탁에 앉는다오
식탁을 차리는 요리사는
평등에 신경을 쓰지 않네
주인과 머슴(노예)은
신께서 창조하신 계급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예외와 관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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