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
오늘의 단어는 이러하다.
나한테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성인 학생이 국적은 한국이지만 나고 자란 곳이 일본인데, 얼핏 내 속을 쳐다보는 시간이 온다. 따라서 배우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자주 위치가 바뀐다.
어제였다. 갑자기 ‘전화로 1분 스피치’ 하자고 했다. 아무 단어나 말해보세요! 제가 말해볼게요! 해서 나는 몇 초 망설이다가,
-자, 그럼 알람 60초 맞추시고, … 시작할까요?
-네 준비되었습니다!
-상실감!
갑자기 조용하다. 저쪽에서 바람도 없는 허공이 밀려온다. 나는 다시 말했다. 상-실-감!
그게 무슨 말이죠? 한다. 이번엔 내가 침묵한다. 글세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전화 안쪽에서 국어사전을 찾는다. 읽는다.
상실, 명사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명사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감 喪失感 명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
갑자기 또 침묵한다. 잠시 후 알람이 울린다. 이 세상에서 우리 두 사람만이 깜짝 놀란다. 내가 말하였다.
네, 그래요. 지금 무언가 느끼고 있는 거죠? 말로 나오진 않지만. 그 느낌 잘 느껴보세요. 우리가 자주 듣는 말(단어)이 있고, 자주 생각하는 말(낱말)이 있고, 가끔 읽게 되는 말(문장)이 있습니다. 맞닥뜨렸을 때 무턱대고 먼 길을 가는 말이 있고, 도무지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는 말도 있습니다. 잠깐 전화를 끊고 생각을 좀 한 다음에 문장으로 쓰고 그걸 읽어주세요.
10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적어놓은 글을 천천히 읽는다. 말없이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을 막았다.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에, 다음 시간에 다시 해봐요.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일제히 매미가 다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