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정박등 하나 켜고

당신의 슬픔을 공부하는 나의 슬픔에게

오늘의 시


토요일입니다 여전히

토요일에 대한 은근한 소문들처럼 오래된 풍문처럼 나는 토요일 오전이 막 지나고 정오라는 뾰족한 시간의 꼭대기를 쳐다보면서


아 오늘도 여전히 토요일이군! 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화창한 토요일에는 내 몸을 마저 빠뜨릴 수밖에 없는 조용한 숲그늘 같은데로 숨어 들어가서 이 찬란한 대낮의 태양과는 별개로 잔뜩 찌푸리며 영영 어두워지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죠 임계점을 만나는 일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하고 춤을 추는 걸 멈추지 않을 때 하고 엇비슷하겠죠 나는 <말의 질서>에 대한 임계점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오래 전해져 내려오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싶습니다 꼭대기에 올라서야만 보이는 풍경들 바람처럼 자유로운 말들의 풍경에 마음 빼앗긴 지 좀 되었습니다만 나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내 마음이 바람 되어본 적 없으면서 내 말들이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진정 슬픔에 깃든 적이 없는 마음에서 명백한 슬픔이 깃든 진실된 말을 건져낼 수는 없겠다 싶은 것과 똑같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을 공부하고 내 마음을 짓누르는 슬픔을 공부하고 내 마음의 슬픔을 짓누르는 당신 마음의 슬픔을 공부하고 당신의 슬픈 마음을 공부하던 내 마음의 슬픔을 짓누르는 이 계절을 공부하고 그 후에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나는 겨우 알았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려면 내 말을 다 지우거나 다 지우려면 다 게워내야 하고 그걸 다 짓뭉개고 나서 <말들의 뼈>를 다시 다 맞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김경후의 툭을 백 번

읽습니다 덩달아 내 마음을 백 번 읽습니다

내가 읽어 내려가던 젖은 나무문의 가슴뼈가

움츠리고 더는 할 말이 없고

슬픔이 무릎을 건드리면서도 다시

설 수 있다는 걸 알아채며

마음엔 고무줄도 있구나

그게 삭아서 끊어지는구나

밤에도 송곳니가 있는데

그게 부러지는구나

그럴 때는 우리도 함께 부서지는구나

말도 안 되게 우리는 돌아서는구나

그때 나는 나에게

스스로 내가 되는구나


(잠시 침묵)


진흙탕에 빗방울 떨어질 때 나는 나를 뚫어지게 보게 되는구나


깨닫고서


젖지 않은 나무문을 다시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문장들을 모두 다 거꾸로 다시 적어보려고 합니다


<말의 유전자>를 다 찢어발기고 질서 정연한 독자의 인내심을 완전히 파손하고 나면 돈 물어내듯 나는 다시 나를 스스로 써보겠습니다 내 이름을 쓰고 내 얼굴을 쓰고 내 어깨 내 발등을 쓰고 나는 정박등을 하나 켜놓고 알람 맞춰놓고 삼십 분만 깊게 깊게 울겠습니다


토요일은 이렇게 나를 힘차게 합니다

여전히


당신의 영혼에 평온이 깃들기를


23.4.22. 토요일

정오가 막 지나며 한참 머무는 내 마음의 편식을 위하여 시를 꺼내어 읽습니다





김경후


그것은 젖은 나무문이 주저앉을 때

그건 가슴뼈가 움츠릴 때

그건 할 말이 없을 때

나는 소리



슬픔이 무릎을 건드릴 때

그래도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소리

마음의 고무줄이 삭아 끊어질 때

나는 소리


밤의 송곳니가 부러지는 소리

그때 우리도 함께 부서지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서로 돌아서는 소리

홀로가 아니라 스스로 내가 내는 소리


내가 나를 뚫어지게 보라고

진흙탕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젖지 않은 나무문은 내지 못할 소리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문학과 지성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