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디톡스에는 용기가 필요해
혼기가 차서일까. 연애를 쉬고 있을 때면 이따금 나의 이상형을 물어보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내가 연애했으면 하는 마음에, 주변 사람을 금방이라도 물색할 작정으로 궁금해하니 참 그 마음이 갸륵하다. 하지만 나처럼 고지식한 사람은 특히나 요즘 같은 ‘담백하지 못한’ 시대에 연애를 하기엔 참 어려운 구석이 많다. 소개팅을 통해 만나기에는 더욱 그렇다.
일단은 이상형을 묻는 말에 답을 잘하지 못하겠다. 이상형이란 무릇 미래 연인이 ‘이러이러한 모 습 내지 성격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필터이다. 나의 과거 연인들을 하 나씩 떠올려 보자면 제각기 성격이나 외형이 다르다. 그들을 일반화하여 추출한 원형을 이상형이 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하다.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 갸륵한 마음에 어느 형태로든 답은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정리한 답은 ‘이것, 이것, 그리고 이것만 아니면 됩니다.’이다. 어떠해야 한다는 양성 필터가 아니라 어떠하지 않아야 한 다는 음성 필터를 사용한다. 이 글은 그 셋 중에 첫 번째 필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스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싫다. ‘많이’의 기준을 딱히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설 명하자면 보통은 계정을 공개 설정 해놓은 경우, 업로드양이 많은 경우 그렇다. 단 그 계정이 비즈 니스 수단으로 수익을 발생시키고 있다면 예외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 이 싫은 게 아니라, 미래 연인 상대로 알아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 중에도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가 두어 명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SNS 공간은 필연적으로 연출이 수반된다. 연출은 당시 순수한 경험을 왜곡하고 담백함을 훼손한다. 그중에 최악은, 연출될 모습을 염두에 두고 경험을 그에 맞추는 것이다. 경험이 주인이 아니라 경험을 표현한 사진이 주인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제는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버린 ’인스타그래머블함’만 봐도 그렇다. 그곳에 가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포스팅하기 위해 경험하는 곳을 찾고 있는 세태가 씁쓸하다. 연출하기 용이하다는 특성이 콘텐츠의 본질을 압도하는 본말전도의 풍경이다.
반면 담백함을 추구한다면 어떨까. 담백함이란 사전적으로 ‘무엇이든 과하지 않고 원래 상태에 가까움’을 뜻한다. 맛이라면 간이 세거나 느끼하지 않고, 색깔은 진하지 않으며, 사람 성품이라면 욕심이 없는 경우에 담백하다고 말한다. 즉 과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맛과 멋이 담백함이다. 내가 담백함을 추구한다는 의미는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삶의 태도이자, 그러한 사람을 찾고 싶다는 희망이다.
인스타그램이 없는 세상에서도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호캉스가 유행하고 샤넬이 품귀현상을 빚었을까? 행복한 경험으로 나의 삶이 채워지면 그만이다. 그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나의 갤러리나 비공개 계정에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면 족하다. 나의 소비, 취향, 외모, 패 션을 연출하여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시할 필요성을 아직은 못 느끼고 있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연애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나를 더 연출하고 더 인스타그래머블한 남자로 거듭나야 할지 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아직은 담백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순간을 즐기고, 인상적이면 담고, 나의 생각을 일기장에 적으려고 한다. 나의 소비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대화와 내 속에서 피어나는 감상을 곱씹으려고 한다. 남들이 모두 그럭저럭 꾸미어 화려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담대하게 담백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