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세계에 발을 디뎌버린 한 젊은 사회복지사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핀휠의 장애인 구직자 면접 컨설턴트이자 기업 지원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김선비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부터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약 6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해온 뼛속까지 사회복지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센터를 그만두고 난 후, 정말 우연히 사회복지사를 채용 중인 핀휠이라는 스타트업을 발견하고 입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저 김선비가 스타트업 핀휠에서 겪으며 있었던 일화들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볼까 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의 경력이 대부분인 제가 스타트업에 대해 얘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겠지만, 제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거나 또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의 속도감은 아주 빠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제가 일해왔던 환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약 6년간 복지기관에서 일을 해오며, 시설, 협회, 교육센터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부분 이미 정해진 사업과 업무 내에서 업무를 배정받았고, 직급에 따른 결재라인과 보고와 승인이 이뤄지는 곳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매주 화요일에는 주간회의를 진행하며 월요일까지 지난주에 각자가 진행했던 업무를 개괄식으로 작성하고, 금주 업무계획을 작성하여 한 명, 한 명 상급자에게 보고를 드리며 관리자의 피드백을 받는 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업무를 한글파일에 정리하고 살펴보며 돌아보고 어떤 부분을 피드백받을지 미리 확인하고, 고민을 하고 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어요. 분기별로 평가회의, 중간 모니터링 점검회의 등등을 진행할 때면, 회의록을 공용문서함에 만들어둔 뒤에 각 영역의 담당자들은 정해진 기간까지 내용을 작성하여 1차로 선임복지사님께, 2차로 팀장님께, 3차로 과장님이나 국장님, 원장님께 피드백을 받은 뒤, 갈기발기 찢긴 회의록을 받아보며 서너 번은 수정하며 회의를 진행하곤 했어요. 이미 회의록을 보지 않아도 내용이 머리에 다 들어와 있어요. 뭘 물어볼지도 다 예상이 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회의였어요. 또는 제가 보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시면 자료를 찾아보고 서류를 만들어냈거든요.
말이 길었네요. 정리하면 정해진 양식에 맞게 사전에 페이퍼로 자료를 작성하고 각자 준비한 내용으로 회의를 하며, 결재권자들의 피드백을 듣는 것이 제 일상이었어요.
근데요. 스타트업은요. 일단 서류가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한글 2010이 없고, 뭐 이상한 노션인지 로션인지에다가 이상하게 꾸며진 업무방에다가 회의록을 적더라고요. 그리고 회의를 하는데, 사전에 회의록이 있지 않아요. 쉬면서 소금빵 뜯어먹고 있는데, 갑자기 회의가 시작돼요. 하고 있는 사업들이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보완해야 할 점이나, 그놈의 디벨롭의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평소 사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거나, 지식이나 경험이 있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 속도감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모든 게 빠르게 이뤄지고, 진행되고,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들이 자주 생깁니다. 페이퍼를 보고 사전에 생각을 정리하고 해야 할 말을 다 준비해야 하는 제 동료 선비님들은 다소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혹시 저와 같은 어려움이나 고민, 걱정이 되시는 분들께서는 되든 안 되든 일단 뱉어보세요.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될 거예요. 내가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지, 어느 부분에서 강점이 있는지, 어떤 부분을 생각을 해야 하는지요.(아 물론, 자유롭게 얘기를 해도 되는 분위기의 직장 한정이에요. 만약 계신 곳이 의견을 주고받기 좀 어렵고, 눈치 보이는 그런 곳이라면 조용히 계시는 걸 추천할게요. 그런 곳은 관리자 분들이 알아서 다 결정해주시고 그것을 그대로 하는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일 잘하다가 갑자기 빠르게 산책을 나가거나 보드게임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때 정신을 차려보면 사무용 서랍장 위에 각종 보드게임의 코인과 카드가 깔린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게임에 진심이거든요.
두 번째, 자유로운 분위기에 속아 책임감을 잊지 말자
위에서 속도감에 대해 말씀드렸었죠.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유롭게, 대표서부터 막내까지 의견을 내며 회의가 진행되어요. 기업의 상황이나 회의의 결과에 따라서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추가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어요. 서로 의견 주고받고 더 나은 결과물을 찾는 것을 즐기거나,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이나 의견을 전달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런 속도감이나 빠른 변화에 적합한 분들인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이 또 부러워요.
저 역시도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제가 일해온 환경이나 제 성향을 보면 안정적으로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빠르게 실행하고, 그 결과로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이 제가 가진 강점인 것 같아요.(김선비의 371가지 강점 중에 한 가지 ‘안정감’)
미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빠르게 적응하고 소통하고 의견을 바로바로 내는 분들을 보면 꼭 천재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근데요. 제가 복지기관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무언가 발언권이나 의견을 많이 내면, 사람들은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함께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한 명, 한 명 인력이 소중하고 적은 인원들이 많은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스타트업은 한정된 자원과 시간 내에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하는 곳 이니까요.
스타트업이라고 자유롭게 회의만 하고, 어디 카페 가서 커피에 베이글 먹으며, 대표가 하는 발표를 보며 팔짱 끼고 틀렸다고 지적을 하는 곳이 아니에요. 외국에서 그들이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적해도, 지적한 직원이 더 나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과 상대방이 내가 지적을 해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이 2가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뭐… 외국에서 일해본 적은 없으니 제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회의를 하면 그 결과에 대해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카페에서 자유롭게 일을 하되, 사무실에서 일한 것보다 일의 능률이 더 높아야 하고 동료들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대표든 사수든 동료든 서로가 얼마든지 서로의 의견에 지적하고 반대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자신의 의견과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물 위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백조가 평온해 보여도, 물 밑에서 그 누구보다 바삐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세 번째, 아이스크림은 꼭 다 같이 사러가라
사실 1번, 2번만 쓰고 끝내고 싶었는데 우리들은 모두 숫자 ‘3’을 좋아하잖아요? 뭘 쓸까 고민하다가 한 번 장난스럽게 써 본 건데 그럴듯해서 그대로 써보려고요.
스타트업... 이라기보다 사실 저희 회사의 모습에 대한 내용인데, 저희는 희한하게 어딜 가거나 그럴 일이 있으면 꼭 다 같이 움직여요. 하다못해 우체국에서 고객사에게 서류를 보낼 일이 있으면 제가 그냥 혼자 다녀와도 되는데, 우체국에서 가까운 곳으로 식당을 정해서 그곳에서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우체국에 가서 우편을 보내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복귀해요.
처음에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이전에 '맥주파티 장보기 편'에서도 언급했었는데, 저희는 사이가 너무 좋아서 (굳이) 개인이 해도 될 업무나, 간식을 살 일이 있을 때, 다 같이 나가거든요…
근데요. 환기도 할 겸 밖에서 같이 걷거나, 간식을 사거나 우편을 보내기 위해 함께 움직이면서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눠요.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얘기, 회의 때 서로 기를 쓰고 자기 할 말만 하려고 했을 때 얘기, 덮어둔 사업에 대한 얘기 등. 요점은 스타트업이다 보니, 서로 회의나 대화, 업무를 공유하는 시간이 정말 많아요. 업무공간을 벗어나 같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어찌 보면 서로 쥐 잡듯이 회의를 하고, 싸우고 일을 하면서도 또 풀어지고 같이 게임하고 또 싸우면서도 일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자기가 하는 일과 자신의 생각을 서로에게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 나의 동료를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유리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같이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것은 아직도 이해가....안....ㄷ....(그래도 요즘은 덜 함) 아뇨. 좋아요. 회사생활이 정말 즐겁습니다.
어느덧 글을 마칠 때가 되었네요. 무슨 제가 스타트업 전문가라도 된 것 마냥 글을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브런치 가족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받아들여주시리라 믿고, 여러분의 하루에 웃음이,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경험담이,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하시는 우리 많은 동료분들에게는 공감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 김선비. 저 자신에게도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글 하나 썼으니까, 오늘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