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계 돌연변이들의 입사지원기
우당탕탕 스타트업 일지: 대표와 직원들이 각자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사무실에서의 일상, 일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연재합니다.
<이상한 대표를 만난 이상한 직원들의 이상한 스타트업 이야기 1부>
채용에 어려움을 겪던 호구박과 대드리의 에피소드를 담았던 스타트업 대표가 주로 하는 실수, 우리도 채용 브랜딩이라는 걸 해보았다 에 이어 오늘은 채용 공고를 보고 찾아와 주신 김선비와 알바트로 준의 솔직한 입사지원 썰을 담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문제의 4시간 면접 에피소드를 들려드릴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려요.
김선비: 보수적인 복지계에서 5년간 글월만 읊다가 개화기를 맞지 못한 사회복지선비님. (스타트업 와서 강제 개화 중)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복지라는 분야에서 일을 해오며, 생활시설, 협회, 교육센터에서 다양한 업무와 많은 장애인 분들을 만나왔다.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그들이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때로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무언가 필요하다면 그 무언가를 찾아 지원해주는 업무를 수행해왔다. 나름 기관에서 이쁨 받고, 클라이언트를 존중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수행해오며 사회복지사들이 흔히 겪는다는 메시아 신드롬(클라이언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복지사들이 겪는다고 알려진 신드롬)으로 마음고생과 ‘클라이언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만큼 나의 삶은 향상되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의구심, 극강의 소진으로 나는 휴식을 결심했다.
사회복지사만큼은 나에게 천직인 줄 알았건만, 믿었던 직업에게 배신당한 느낌(사실은 나 자신에게 더 큰 배신감)이 들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쉬고 싶어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다. 이곳에서 일에 대한 마음과 나에 대한 마음을 모두 비우고 오리라.
…3일 쯤 지났을까? 나는 강릉에서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매일같이 들여다봤지만, 그래도 나의 강릉 한 달 살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누구에게나 휴식은 필요한 것 같다.
퇴사를 하고 강릉을 다녀오고도 두 달이 지났을 때,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본다. 사회복지분야를 위한 구인구직사이트가 아닌, 사람인 또는 잡코리아와 같이 모든 직종을 포괄한 구직사이트를 살펴봤다. 이상하게 다음 직장은 사회복지사로서 근무를 할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직업과 수많은 기업의 공고문 사이에서 ‘사회복지’를 지우고, ‘장애인’을 지우고 보니, 나 자신이 맞춰질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어디든 넣으면 붙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나, 흥미가 없었다는 뜻이다.) 특별한 소득 없이, 세상 복지기관들은 어떤 공고문들이 올라오는지, 내가 일했던 직장은 새로운 직원을 구했는지 등 떠나간 고향 소식을 궁금해하듯이 복지넷을 열어본다. 내가 일했던 직장은 새로운 직원을 구해서 이미 홈페이지에 보이듯이 많은 사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었고, 다른 기관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사회복지기관도 아닌 것이, 뭔가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공고문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센터 이름이 주식회사 핀..휠 이란다. 소셜벤처는 또 뭔지… 새로운 기관이 생겼나 하고 열어 본다.
주식회사인데,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하고, 사회복지사를 우대하는데, 자격증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장애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환영한단다. 본능적인 호기심 레이더가 발동하여 이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인재 채용 홈페이지에는 바람개비들이 멋들어지게 날 반겨주고, ‘장애인과 기업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이라는 글자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그 외 ‘플랫폼을 만들어 장애인 고용시장을 잘 만들어보겠다.’, ‘예비창업패키지’, ‘같은 목표, 의미 있는 성과를 함께’와 같은 몇몇의 키워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곳에서 일한다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나의 대혼돈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자격 요건과 우대 사항의 내용이 눈앞에 펼쳐져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사람들이 좀 가볍게 접근하라고 일부러 작성해둔 내용인 줄 알았으나, 암만 봐도 그 어디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확인할 수 없었고, 혹시라도 나중에 저 내용을 웃음으로 되받아 치기라도 한다면 정색을 하진 않을ㄲ.. 아 아니. 혼란스러웠다. 대표와 동료와 맞짱은 왜 떠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장애인들을 위해 좋은 사업을 하는 곳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EBS PD 출신의 팀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과 사회복지사가 무슨 일을 함께 한다는 건지 궁금하다.
‘사회복지는 하기 싫고, 또 장애인들과 함께 하고 싶긴 하고… 에라 모르겠다.’
나에게 맞는 자리가 아니거든, 그 어디든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카페에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나였는데, 이상한 기업의 채용 공고문에 이끌려 이력서를 써보기로 한다.
우리 기업의 이력서 가장 상단에 적힌 문구이다. 이 내용을 보고 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을 최대한 잘 표현해주세요.’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이 사람들은 자기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매우 궁금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이력서 내용은 생각보다 간결했고, 자소서 내용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소서에 적힌 질문지로는 네 가지로 아래와 같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동물과 그 이유를 상세하게 써주세요.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와 그때 느꼈던 감정을 들려주세요.
가장 어려울 때 본인을 위로했던 문장이나, 글귀에 대해서 적어주시고 어떻게 위로가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친한 친구들을 어떻게 만났고, 친구들이 어떠한 친구들인지 자랑해주세요.
생전 처음 받아보는 자소서에 무엇을 작성해야 할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평상시에 썰 풀듯이 작성하면 될 내용이었으나, 이 내용이 기업의 이력서에 들어간다 생각하니, 면접관이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질문지를 썼는지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아 어려웠다.
적격자가 나타날 경우 채용이 마감될 수도 있다는 말에 마음은 조급해오고, 면접관의 의도는 보이지 않고, 뭐라고 써야 할지, 내가 닮은 동물은 자라(학생 때 목이 길다고 거북이라고 불렸으나, 거북이는 귀여우니까 하지 말라고 그래서 자라가 되었다.)인데, 목이 길다고 자라라고 적을 수도 없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로 표현할까 하다, 예상 질문(서울 시내에 있는 비둘기는 시민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할 수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표현했냐)에 답변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비둘기도 탈락이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이력서 가장 상단의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본인을 최대한 잘 표현해주세요.
면접관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 자신을 포장하여 보여주기에 급급한 나의 모습에서 과연 이 이력서와 자소서에 적합한 지원자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더 고민하고 작성하기도 귀찮았고, 뭔가 가장 빨리 작성하여 가장 1등으로 이력서를 제출해서 합격해, 다른 사람들은 지원하지도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상하게 뭔가 이어지듯이, 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자소서를 휘갈겨 쓴 뒤, 노트북을 닫는다.
(면접 썰은 2부에 계속)
(사실 더 써야 하는데 저녁에 맥주 약속이 있는 관계로… 여기까지! 대드리님 ㅈㅅ)
알바트로 준: 사회복지가 싫어서 개발자로 전향했는데 어쩌다 보니 꼰선비와 같이 일하고 있는 서퍼 지망생
사람은 모두 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지 아니한가.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고민이 많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힘들어하기도 하였다. 상담을 받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받아봐도 나는 큰 효과를 얻지 못한 느낌이었고, 좀 더 나에 대해 알고 싶고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심리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업을 하다 보니 학사로 심리학 분야 취업은 매우 힘든 분야라고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까지 나와야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혹시 모를 보험의 개념으로 사회복지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하였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배우고 싶은 게 많고 먹고 싶은 게 많고 경험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데 이것들을 모두 하기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하더라. 그래서 돈을 벌 방법들을 항상 고민하고 실행을 하기도 하는 편인데 일단 사회 복지로 돈을 벌기엔 한계가 있다. 과에서 장난으로 하는 말들 중 부부가 사회복지를 한다면 본인들이 사회복지 대상자가 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처럼 사회 복지 분야는 돈을 벌기 힘든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뭐가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개발을 공부하게 되었다.
나는 돈이 없다 →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 WHY? → 가게도 차려야 하고 기본적으로 투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 그럼 온라인으로 시작하면? →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 → 그럼 투자금이 줄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준다. → 인건비를 save 하면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 → 그럼 내가 배워서 직접 하자
라는 생각이 전부터 있었고 대학교를 가서 어느 한 광고를 보게 된다. 그것은 '멋쟁이 사자처럼'이라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발을 가르쳐주는 비영리단체의 광고였는데 한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바로 해외에서는 비슷한 코스의 수강료가 1000만 원이 넘어간다는 문구. '이걸 하면 나는 1000만 원이 넘는 교육을 듣는 거네?'라고 생각하며 바로 지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우리 학교에 개설이 되지 않아 다른 학교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아무래도 개설하는 학교의 재학생이 우선 선발 대상이라고 하였다.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군대를 갔고 전역을 한 뒤에 다시 같은 광고를 보게 되었다. 위치는 우리 학교 커뮤니티!! 그래서 지원을 하고 합격을 했고 공부를 시작했다.
“Hack Your Life” 멋쟁이 사자 슬로건처럼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AI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졌다. 경제적 활동이 없이 더 시간이 흘러가게 된다면 나태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빨리 돈을 벌면서 나를 발전시키자!'라는 생각으로 여러 채용 사이트들을 뒤져 보았다.
채용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는 시기에 사회복지사 채용 관련 사이트를 보다가 Notion으로 제작된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처음 든 생각은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었다. Notion은 IT기업들이나 관련 스타트업 같은 곳들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워크스페이스이다. 주로 오래된 기술 툴을 쓰는 사회복지 판에서 노션을 활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우 반가웠다. (오래된 기술을 쓴다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채용 분야는 PM. 소셜 벤처라는 이름을 가진 핀휠은 어떤 기업인가 하고 이력서 양식을 열어보았다. 물어보는 것들은 나를 떠올릴 수 있는 동물, 살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 나를 위로해주었던 글귀,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들 뿐이었다. 되게 재밌었다.
자격 요건은 대표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일 것, 맛에 진심인 사람일 것 등등 어떻게 보면 인재 채용과는 멀어 보였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맛에 진심인 사람일 것”이라는 문구는 나를 표현한 것 같았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맛을 탐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많지 않은 사람 중 하나가 나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를 위한 채용 페이지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 나 자신에 대한 탐구도 자주 하였기 때문에 '금방 쓰겠는데?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작성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로 다른 질문들은 작성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동물'이라는 질문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도 어떻게 보면 동물인데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은 당연히 사람이지 않을까?' DNA의 구조도 가장 비슷하고 사회적 동물, 지적능력이 있다는 것과 사고방식까지 그 어떤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나를 표현한 동물은 '인간이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이건 질문의 의도와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사람을 동물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까? 만약, 인간이 아니라면 또 어떤 동물이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심사숙고하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까마귀. 까마귀는 그냥 똑똑한 새로 유명하지만, 까마귀는 특이한 개체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학습능력이 좋고 물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과 더불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객체인데 그 무리에는 리더가 없어 개개인의 객체가 자유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가 되는 특성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내가 지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까마귀를 선택했다. 그렇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얼마 뒤 핀휠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봅시다. 근데... 면접 시간이 길어요."
얼마나 길겠어?
그렇게 김선비와 알바트로 준은 장장 네 시간의 인터뷰를 보게 되는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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