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즐 issue N°1 - 1
약속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4시에 길을 나선다. 첫차도 아직 다니지 않는 시각, 각자의 방법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힘든 여정이 될 거란 직감 때문인지 식당을 먼저 찾는다.
몇 주 전, 도쿄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반나이 타쿠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그는 흔쾌히 도쿄로 우리를 초대했다. 반나이 타쿠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그의 집. 그의 작업실이기도 한 그곳은 도쿄 외곽에 위치해 있다. 방문을 약속한 오후 3시가 결코 이른 시각은 아니지만 복잡하기로 소문난 일본 지하철을 이용한 초행길이었기에 마음이 급하다. 짧은 비행을 거쳐 숙소가 있는 시부야에 도착했으나 체크인할 여유는 없어 무거운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날씨가 너무 맑아서 가는 내내 깨끗한 풍광을 두 눈과 카메라에 가득 담아둔다. 반나이 타쿠의 그림과 비슷해서일까. 풍경이 낯설지 않다. 마을버스만 간혹 지나다니는 아주 조용한 거리의 반대편에서 미소를 띤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말을 건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나요?”
반나이 타쿠는 도쿄 출생. 타마 미술 대학 그래픽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광고 디자인 제작 회사를 거쳐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Pen", "TRANSIT", "JAL", "SKYWARD" 등의 잡지와 우편저금은행 등 광고 매체의 일러스트레이션도 맡았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은 도서커버, 잡지 일러스트레이션, 무대 광고물 등 다수. 도쿄에 소재한 MJ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공부했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 주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반나이 타쿠 내외와 두 명의 자녀들, 통역을 맡은 그의 친구, 심지어 반려묘 ‘무기’까지. 불가피하게 끌고 온 많은 짐에 양해를 구하며 급하게 외운 짧은 일본어로 인사를 나눈다. 촬영 장비를 세팅하는 동안의 적막이 싫어 즉흥적으로 건넨 질문에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한국에 와본 적이 있습니까?”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혁오밴드와 신모래 작가를 좋아합니다.”
반나이 타쿠는 모던 록을 좋아한다. 특히 브릿 팝 장르가 주는 과잉 되지 않은 활기가 작업에 많은 영감을 준다고. 음악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 듣곤 하는데 그의 취향을 파악한 유튜브가 어느 날 혁오밴드를 추천해주었단다. 말 그대로 취향 저격이다. 혁오밴드는 음악도 훌륭하지만, 젊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앨범 커버의 독특함으로도 유명하다. 언젠가 두 아티스트가 함께 작업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도쿄에 오기 전날, 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홍대의 땡스북스를 들렀다. 신모래 작가의 아트북을 집어 들었다가, 신진 아티스트를 소개하고픈 마음에 다른 아트북을 구매했다. 전날의 선택이 아쉬울 수도 있는 선물을, 반나이 타쿠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물으며 고맙게 받아준다.
[핀즐이 펴내는 매거진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하여 브런치에 발행합니다. 아티스트의 특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작품들을 핀즐과 함께 경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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