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담당하는 학예사에게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는 전날 밤은 특별하다. 거의 밤샘 작업으로 채워져 디데이(D-Day)와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다 전시 오픈. 왠지 분주한 느낌을 받으며 관람객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다.
전시실을 관람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관람하며 걷는 방법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느리게 걷는 것은 유물을 하나하나 이해하는 데 좋다. 설명 판이 도움이 된다. 빠르게 걸으면 시대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 진열장에 문자가 보이면서 선사시대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멈추기는 학예사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다. 관람객이 전시물 앞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물론 유물이 내뿜는 기운과 관람객의 지적 혹은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전시를 위해 보낸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박물관 일을 하면서 개발한 어쩌면 개발된 방법이 제자리 돌기다. 가능하면 기둥에 시야가 가리지 않는 전시실에서 유용한 방법이다. 무소음 시계의 초침처럼 전시실에 서서 조용히 돌면 먼저 석기가 보인다. 이어서 청동기와 철을 재료로 한 유물을 지나고, 지류(紙類. 종이)가 진열된 진열장에 이른다. 때론 선사시대의 토기가 보이다가 삼국시대의 도기를 지나 고려와 조선의 자기가 나타난다. 관람자가 인공위성이 되어 지구의 한 면을 스캔하는 느낌이며, 어안렌즈에 찍힌 사진처럼 거의 동시에 수 천 년의 역사가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전시실을 걷는 것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다. 발은 타임머신의 엔진이며 눈은 방향타다. 눈의 지시에 따라 느리게, 빠르게 걷다가 멈춰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둘러볼 수도 있다. 걷는 방법에 따라 시간을 멈추어 유물에 집중할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며, 공간은 시간으로 채워진다. 박물관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시간의 흔적을 크고 작은 유물로 길게 늘여놓은 제법 큰 진열장이다. 전시실에 흐르는 시간과 유물은 인간의 흔적이다. 그렇다고 유물들이 역사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대도시에서 밤하늘을 보면 빛 공해 때문에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와 같은 화려한 별들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은하의 어느 별보다 밝지만, 지구와 멀어서 혹은 가까워도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서 보이지 않는 천체도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한 시대의 소산이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바라보던 장신구와 칼, 노부부가 머물던 고분 모형 그리고 젊은 부부 앞에 놓인 토기들은 시대의 한 면만을 알려줄 뿐이다. 대형 고분에서 나온 위엄 있는 유물들은 당시 지배층의 한 단면만 보여준다. 그들이 지배하던 사람들의 자취는 고분 저 멀리 어딘가에서 고고학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유물로 이해하는 것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지만, 이것은 어느 분야나 존재한다. 한계에 좌절하거나 극복하면서 발전한 것이 지금의 학문이고 현대 사회이다. 유물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는 고고학이나 미술학의 경우 주변 학문인 역사학・인류학・자연과학 등의 연구를 받아들여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한여름 오후, 예기치 않은 소나기를 피하려고 박물관에 들어왔더라도 다양한 정보가 무의식적으로 들어온다. 일반 건물처럼 실내장식이나 조명에 관한 것도 있지만, 특이하게 로비나 전시실에서 시간의 역사가 숨 쉬는 유물에 대한 정보도 받는다. 이 정보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기억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여 불현듯 드러날 수 있다. 소나기를 피한 건축가가 멋진 디자인을 구상하다 전시실에서 본 고배(굽다리접시)가 갑자기 떠올라 빈 공책에 고배 모양의 건물을 스케치할 수 있다.
유물은 전문 해설사나 설명판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만, 유물과 유물 사이를 횡단하고 있는 지성의 역사는 찾기 힘들다. 아무래도 유물을 그것이 발견된 지역과 연관 지어 해설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물에 스며있는 인류 지성의 보편성과 보편성 속에 한국적 특성은, 지역의 역사가 중심인 상설 전시보다는, 특별 전시에 어울리는 주제이기도 하다. 비록 좁은 지면(화면)이지만 작은 특별전을 열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