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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어떠한 한 마디의 위로보다 나를 더 위로하던 기억의 조각

by 샷샷언니

햇살이 오랜만에 마구 부서지는 오후.


마음도 우울하고 어디론가 도망 치고 싶을 때에도

딱히 나라는 사람은, 큰 맘 먹고 연차를 쓰고도

어딘가 도망 갈 수가 없다.

무언가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아 맞다! 이것도 해야 하는데!"


빨래를 돌리고 청소하고 아이의 보리차를 끓인 후 ,

어젯밤에 건조기에 넣어 둔 옷들을 꺼내 나름의 분류법을 통해

잘 개어 서랍 장에 넣어 둔다.


작년에 일이 바쁘고 출장이 잦아서 온 집에 빨래들이 널리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가

집어 입히던 때, 나는 정말 진절머리 나면서도 아이와 잠시 놀아주고 그 다음 날

잔뜩 긴장하며 출근하느라 체력이 방전되어 늘 째려보던 일이었다.


죄책감이었을까.

완벽한 와이프, 완벽한 엄마를 해내지 못한 다는 것에.

좀처럼 '나를 위한 시간' 을 가지자는 것에 무색하게 나는 밀린 집안일에 묶여

좀처럼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것 저것 하다 보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나를 위해 오늘은 맛있는 것을 아이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식에 집중해서 우아하게 즐겨보자고 생각했건만,


" 굳이 밖에 나가서도 뭐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긴데 뭐."


내 손은 머리를 이기고 자연스레 찬장안에 잔뜩 쟁여둔

(*싱글이었을 때는 늘 쳐다만 보는 대상이었던)

라면 한 봉지를

이걸 꺼냈다 저걸 꺼냈다 해 본다.

오늘은 국물이 있는 걸로 먹어 볼까,

짜장이나 비빔면을 먹어볼까.


그것이 문제로다.


예전에는 3달에 한번 있을 까 했던 라면은,

(* 그 라면도 여러 번 끓여서 기름을 빼내고

여러가지 야채와 스프 반을 넣은

내 친동생이 붙여 주기를 "그럴거면 왜 라면 먹어?"

라고 하는 이름의 라면이 된다.)

지금은 3일에 한 번 꼴로 내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만큼 몸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지는 데도

반복되는 것은 나의 미련함임을 알고 있으렸다.


그럼에도 왜 바꾸질 못하는지는

나의 나약함.


그닥 매일 외부에서 비슷한 거 먹을 거

조금 아끼자는 생각도

물론 있었긴 하지만,


궁상 窮狀 (*궁할 궁, 상황/형상 상)

궁상맞다 라는 표현은 이런 데 쓰는 것일까.


간만에 통화하게 된 J 가 말한다.


"궁상 떠니 왜,밖에서 뭐 좀 제대로 된 거 먹어.

그리고 간만에 연차 냈다며? 아기 오기 전에

얼른 좀 바람이라도 쐬고 와.

S! 너를 위한 시간을 좀 가져 보라고!

왜 간만에 전화했는데 욕 나오게 하는 거냐고."


그러게.

나 왜 이러고 있지?

또는

왜 (일하고) 욕먹고 있지?


잔소리의 형태를 지닌 문장 구사력과

잔소리 구조의 기승전결의 모든 요소를 가진

찐 친구 (진짜 친구)의 충고를 듣고

급히 정신이 번쩍 나서 뛰어 나간다.



" 음, 근데 어디를 가지?"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고 나니,

'나만을 위한 곳, 나만을 위한 것' 이라는 게 주어지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두리번 거리다가 정한 곳.


그래도 잠시라도 나만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늘 가던 그 곳.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은 언제나 나름대로의 향기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적 월간 패션 매거진에 화려한 부록들을 구경하기 위해 기웃거리던 동네 서점부터,

항상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면 찾아가서 전문 서적들과 자격증 서적을 뒤적이기도 하고

하염없이 우울한 날에는 내용이야 뻔하지만 그 날 만큼은

꼭 나에게 만 해주는 듯한 이야기여서

한 가득 꼭,

부여 잡고 자석 붙은 듯 손에서 내려 놓아 지지가 않는

자기 계발 서적 들이

어느 순간 내 앞에 수북이 쌓인다.


마치 자기 암시의 주술 의식을 시작하는 것 처럼.


어떠한 때에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때가 있었다.


혼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책을 한 번 뒤적인다.


가끔은 너무 마음이 감정의 파도가 넘쳐 흐르면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옛 전래 동화의 게으른 당나귀가 꾀를 부리다 무거워져 버린 목화솜 짐 처럼

무겁고 또 무거워져서

심장이 너무 짓눌러 져서

친한 친구에게 조차 털어놓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종종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있다.


마음이 너무 짓눌려서 때로는 애초에 왜

짓눌리게 되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갈수록 어려워지는 나의 마음과 감정이 정리가 안되서,

또는, 내가 세웠던 나의 20대의 휘황찬란했던

이상의 벽에 부딪혀서

때로는 나혼자 들떠서 시작한 연애에 상처받아서

너무 뻔한 20대의 방황이

너무 지겨워져서, 너무 고달파서,

나는 가끔 너무 힘들어지면

서점으로 가곤 했었다.


'나'라는 좌표를 잃어버려서

어떻게 방향을 찾기 어려웠을 그 때.

하지만 뻔한 위로를 듣기가 너무 힘겨울 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자기 최면을 아무리 해도 들어오지 않을 때,

천장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다 못해서

엉엉 소리내서 울거 같아서.

또는

엉엉 소리 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엉엉 소리내서 울면 밖에 있는 가족들의

“무슨일있니?” “왜그래?”


그 말에 답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무거워서

입도 무거워졌는지 더 침울이라는 감정으로

푹 잠수하다 못해서 꺼져버릴 것만 같아서

혼자 울고 싶을 때 찾기 좋은 장소.


하지만 가끔 가다가 가슴을 치는 책을 만나버리면

오래 만난 친구처럼 눈물을 쏟아버리고는

한참 후에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서점 화장실 찾느라 정신없을 때도 많았던


그 곳.


남들은 뻔하다고 하는 자기 계발서를 여러 권 껴안으며

심리적으로 마음에 안정을 주는 느낌의 책을 한 권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가끔은,

문장들이 마음속에 내려앉아 아픈 곳을 막아준다.


토닥 토닥.


" 괜찮아. 괜찮아."


늘 채찍질하며 달려온 그 날 들에 꼭 내 곁에 가끔 있어 줄

소중한 작은 기억 들.


늘 예민해져서 툭툭 다투기만 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많이 힘들었겠다. 왜 혼자 짊어지려고해.

엄마가 있잖아."

이야기 하던 기억.


잔뜩 혼나고 자다 일어나니

여러 과일과 포스트잇에 적은

엄마의 마음들이 넘쳐 한 껏 울었던 기억.

"사랑해.미안하다."


8살 어린 동생이 항상 방학이 끝나고 나면

무섭기만 한 언니인데도 항상 보고 싶고 응원하고 있다고

깨알 같이 편지를 적어 주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꼭 참으며 내게

" 씩씩하게 잘 있을게. 언니 잘 다녀와!"

를 해주 던 기억.


긴 유학 후 돌아와 늘 가치관으로 부모님과 늘 다투던

내 손을 잡아 주며

"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남편과 사귀기로 한 날 손을 잡아주며

어깨를 빌려 울며 이야기 하던

그 날의 작은 기억.


토닥 토닥.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는 작은 기억들이

나를 단단하게 해준다.


따뜻한 햇빛들의 금타래들이 모여서

내 상처난 곳들을 소독해준다.

확 아물지는 않더라도 조심 조심

따뜻하게

빛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을 때,


" 이제 다시 가볼까?"


멍하게 지쳐 있던 내 얼굴이 밝아진다.




토닥토닥


어떠한 한 마디의 위로보다 따뜻하게

나를 위로하던

햇살 가득한

작은 기억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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