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며

by 북남북녀

그녀라고 말해볼까 한다. 잠시 스치듯 만났던 어느 여성을. 그녀의 한때와 내 한때가 우연히 겹쳐지는 공간에서 있었던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악의적인 걸까, 부주의한 걸까,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생각했다. 대체로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렇게 결론지어야 다시 또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사람이 어려움 없이 곱게 자라 지나치게 천진난만하면 타인의 어려운 상황 같은 것은 볼 눈이 없기도 한 것이라고.


어떤 노래 가사처럼 그녀는 160센티미터의 키에 45킬로그램 몸무게의 전형적인 화신 같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고는 했다.

다섯 시 이후에는 살이 찔까 두려워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먹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매일 입는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인 나와 달리 면바지나 정장 바지에 블라우스나 셔츠를 입고 재킷을 걸치는 세미 정장풍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또각, 또각 걷는 그녀의 구두 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에 울리고는 했다.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고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밥 먹자 하면 햇반 두 개를 데우고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카페 한구석, 햇반 하나에 컵라면 하나를 둔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곧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는 아르바이트생과 이제 일을 시작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식사 시간이다.
밥을 먹을 때면 그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생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미팅이 들어왔는데 너무 수준이 안 맞는 대학에서 들어왔다고. 자신은 그래도 어느 대학에 다니는 사람인데 너무 한 거 같다고.
졸업하면 어느 정도 수준의 기업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남편은 어느 정도 수준의 외모에 어느 정도 수준의 직업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수준, 그녀의 말에서는 항상 수준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수준이 맞아야, 수준이 높아야, 수준의 자격을 획득해야......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스무 살이 넘어 겨우 카페 알바만 하고 있는 내 생활수준을(그녀처럼 이름 있는 대학의 학생도 아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앞에 앉아있는 나는 사람 같지 않은 것일까. 사람 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수준이 안 되는 사람 앞에서 매일 수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선의로 나를 채찍질하는 것일까. 답답하니 좀 달려가라고 밀고 있는 것일까.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며 나는 그녀가 계속 생각났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애쓰던 그녀를.

물론 작가 캐럴라인 냅이 내가 아는 그녀와 비슷해서는 아니다.
캐럴라인 냅이라는 작가의 섬세한 에세이를 읽으며 사람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작가 캐럴라인 냅은 정신분석가 아버지(정신과 의사)와 화가 어머니를 두었다. 케임브리지라는 세련된 동네에서 태어나고 숟가락 쥐는 법을 배우기 전부터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게 운명이라고 배웠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특권이 지나치게 많고 고상했던 성장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작가는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고상한 부모님을 두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업(기자)을 가진다. 그러나 작가의 20대와 30대는 알코올 중독, 거식증, 대인 기피증, 파괴적인 이성과의 관계로 불행하게 흘러간다.

우울, 고립, 외로움, 상실. 불행의 요소를 깊이 체험하고 글을 쓴다. 가차 없이, 냉정하게, 분석적으로.(책의 소개말로 표현한다면 솔직하게, 우아하게, 또렷하게)


중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지역에 산다고 생각해 보라고. 방탄조끼와 헬멧 없이 보호 장구도 없이 끌려 나와 햇살 아래에 선 자신을 상상해보라고. 얼마나 헐벗은 느낌일지, 얼마나 무서울지.
거식증과의 전투와 알코올 중독과의 전투를 둘 다 겪은 작가는 중독을 포기한다면 하나의 전쟁은 끝났으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영역에서 무기도 없이 싸워야 한다고. 매일매일 마취제도 없이 부상을 겪어내야 한다고.

겉으로 보이는 작가는 불행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듯한 직업에 그럴듯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종종 오해받기도 한다. 거만하고 차갑고 못된 여자로. 도도하고 고상한 척하는 여자로.
작가는 그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일 뿐인데.

남자 친구 집에 갈 때면 말은 하지 않더라도 식탁을 차리거나 냉큼 일어나 그릇을 치운다.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하는 태도를 최대한 실행해 보인다. 그러나 남자 친구들의 부모는 작가를 무심하고, 쌀쌀맞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본다. 그녀가 수줍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작가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부유한 동네, 고상한 부모님, 좋은 학벌에 뒤처지지 않는 외모까지.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에 가까웠다. 열여섯 살부터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술을 마시기 시작할 정도로. 자신을 통제하기 위하여 음식을 거부할 정도로. (“뼈로 이뤄진 창살에 나를 가둬서 보호하려고 5년 가까이 굶었었다”)

작가의 행동을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나 다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불안, 슬픔, 외로움, 예민한 자의식, 우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얼굴과(외모와 몸매에서 자유롭지 않은, 순응과 착함이라는 깊게 새겨진 본능을 가지고 있는) 타인으로 인해 상처 입는 현대인의 얼굴과 근원적인 불안과 외로움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작가는 보여준다. 나 역시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사람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가 잠깐 알던 그녀, 어느 정도의 수준을 항상 말하던 그녀. 어느 정도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나에게 자괴감이라는 어두운 숲을 걷게 만들었던 그녀.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친구가 되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아는 사람으로 스쳐 보내야겠다고. 그때는 그것이 그녀 탓이라고 생각했다.

악의적이거나 부주의하거나 생각이 없는 그녀 탓이라고.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들이 친구가 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수준에 못 미친다는 마음의 한 조각이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거부하고 싶었던 거라고.


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그녀와 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내가 분명히 다르기는 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른 정도였지 친구가 되지 못하는 정도의 다름은 아니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악의적인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외적인 것에서 지나치게 후퇴하고 있었던 그때의 나에게 그녀의 말들은 독처럼 스며들었다. 그녀의 말들은 내 못남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작용을 했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마녀로 만들어야 했다. 악의적인 사람이라고 평하거나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나보다 한두 살 많았지만 그녀 역시 스무 살 초반의 어린 여성이었다.
인생에 대한 꿈을 꾸고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였다. 그녀의 기대와 내 상황이 어울리지 않았을 뿐.


책을 읽으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밥 먹자고 말하는 그녀가 계속 떠올랐다.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고 작은 핸드백을 멘 그녀가 커다란 전공서적을 안고 들어오던 모습. 발랄하고 상큼하게.

이제 와 느끼는 것은 나는 그 순간이 미치게 싫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은 격렬한 질투였다.
내가 질투라는 감정을 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그녀라는 사람을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
<명랑한 은둔자>라는 부드러운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은 내게 반복적으로 그녀의 영상을 보내온다.
이제 그녀를 놓아주라고.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든지 사람은 모두 아픈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고립은-고립되고 싶은 충동은-두려움과 자기 보호에 관련된 일이다. 고립은 고치를 만드는 것, 매혹적으로 편한 나머지 벗어나기가 어려워지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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