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 봄이야

제제와 홍당무의 공통점

by 북남북녀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야 실망도 안 하거든, 아홉 살인 또또까 형은 말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내 것’ 하나 꼭 받고 싶은 너는 운동화를 밖에 내놓지.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비어있는 운동화를 보고 너는 소리치지

아빠가 가난뱅이라서 싫다고. 그 소리를 들은 아빠의 눈을 본 너는 마음이 아파져. 걸을 때마다 아빠의 눈을 밟아 아빠를 아프게 하는 듯 느끼지. 다섯 살이었는데.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 못하면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는 다섯 살인데 말이야.


아빠의 실직으로 세가 밀려 너희는 이사를 해야만 하고,

엄마와 누나는 공장으로 아홉 살 형도 성당에서 복사 일을 해야해.

선물도 풍성한 음식도 없는 크리스마스 날, 가족들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누나와 형은 아는데 너는 아직 모르지. 그래서 너는 매일매일 가족들에게 매를 맞는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아빠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형에게.


아빠에게 죽을 정도로 맞은 너는 아빠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음속에서 사랑하기를 멈춰버리면 죽는 거라고 다섯 살인 너는 생각한다.

누나는 공장에 간 엄마 대신 집안일로 바쁘고 너를 돌봐줄 사람은 없어.

네 동생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네 속에 악마는 꼭 어떤 사고를 치라고 속삭이지.

초를 보면 바닥을 미끄럽게 하고 싶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면 왜 끊어놓고 싶은지.

스타킹을 보면 뱀이 생각나는 너는 작은 장난꾸러기다.

스스로 하지 말자 하면서도 어떤 충동으로 장난을 계속 치는.


너를 돌보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가족들은 나이가 되지 않은 너를 학교로 보낸다.

다행히 너는 글자를 그냥 알게 되었거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똑똑한 너는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의 사랑도 받아. 선생님이 너를 사랑해 주니 장난치는 것을 멈추지.

학교에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의 배고픔도 헤아릴 수 있는 아이가 되지.


여력이 없는데 너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에게 너는 짐일 뿐이야. 가만히 있지 못하는 너를 질문이 많은 너를 가족들은 ‘작은 악마’라고 말하며 때리지만, 너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너는 천사고 황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지.

가난으로 슬픈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때릴 가능성이 많아. 일상의 힘겨움이 작은 아이에게 손을 대게 하거든.

너를 때리는 누나와 형도 아직은 어린 나이지. 현실을 감당하기에는. 약한 사람들은 더 약한 사람들을 때리기가 쉬워. 마음속에 있는 불만과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를 가능성이 많거든. 그래서 약하기도 하고.

가난해서 화가 난 너의 가족들에게 ‘작은 악마’인 너를 때리는 것은 정당한 일이야. 너는 작은 악마에 망나니니까.


네가 아빠로 선택한 뽀르뚜가가 아니었으면 너는 망가라치바에 뛰어들려고 했어. 죽어 버리려고 했지.

그리고 결심해. 서부 액션 영화는 보지 않겠다고. 포옹하고 사랑하는 애정영화를 보겠다고.

똑똑하고 영리한 너는 알고 있어. 너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뽀르뚜가는 너에게 사랑을 주지. 너의 이야기를 듣고 네가 원하는 것들을 이뤄주려고 해. 친구가 되어서. 아빠가 되어서. 뽀르뚜가의 사랑은 너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뽀르뚜가, 당신은 내가 꾸는 모든 꿈에 나온단 말이에요..... 내가 어딜 가든지 당신은 언제나 함께 가요.


사랑하는 뽀르뚜가가 죽은 날, 너는 쓰러지지. 열이 나고 많이 아파. 사랑을 잃은 너는 죽을 정도로 아파. 슬픔이 너무도 커 그냥 죽었으면 싶은데 하늘은 너는 데려가려고 하지 않아. 계속 살아가야 하지.

너에게 말을 걸고 친구가 되어준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는 작은 흰 꽃을 하나 피웠어. 너는 알고 있지.

너와 함께 성장하고 있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작별 인사한다는 것을.

이제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너는 고작 다섯 살인데.

다섯 살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는 제제.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제제. 그래서 조숙한 제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아는 제제는 박쥐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꺼려하는 박쥐를.

‘박쥐들도 사랑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는 상처 받는다.

가난한 아이는 보호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쥘 르나르의 <홍당무>에서 학교 실장인 비올론은 마르소를 귀여워한다.

어느 밤, 비올론이 마르소에게 키스하는 것을 목격한 홍당무는 사감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올론은 학교를 떠나게 되고 홍당무는 유리창을 깨뜨리며 울부짖는다. "왜 마르소에게 키스해 주고 나한테는 안 해줬어?"

홍당무 역시 인기 많은 비올론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홍당무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파괴에 가까운 방법을.


제제가 매를 심하게 맞은 후 이제부터는 애정영화를 볼 거야 다짐하듯 학대받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듯하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의 입장에서는 에로스든지 아가페든지 중요하지 않다.

관심받고 있고 그러기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이 있을 뿐이다. 제제가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는 그림은 상징적일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하여 행하려 하는 아이의 분별없는 행동을.


애정결핍의 아이는 기괴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향하는 과도한 집착으로 타인을 괴롭게 할 수 있다. 유리창을 깨서 피를 흘리며 내 뺨도 이렇게 붉어질 수 있다고 울부짖는 홍당무와 같이.(홍당무는 친엄마로부터 학대받는다.)

음지의 식물이 빛을 향하여 자라듯이 아이는 찾는다.

자신을 비춰줄 빛을.


제제, 봄이야. 햇살에 눈이 부신.

아른아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듯한 열기로 가득한봄이야, 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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