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으로부터 오는 것

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에서

by 북남북녀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모방의 관계 그리고 경쟁의 관계다. 경쟁이란 타인이 소유한 것과 똑같은 것을, 필요하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획득하기 위해 상대방을 모방하려는 욕망이다. 모방은 같은 대상에 대해 둘 이상의 욕망을 만들어낸다. 인간 폭력의 주요한 원인은 이 모방이다.


우리가 이웃의 욕망을 모방하면 이웃도 우리의 욕망을 모방한다. 결국 우리는 나선형으로 된 끝없는 경쟁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과 복수를 행하면서 서로를 비난하게 된다.(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희생양을 이용해 자신의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모방적 폭력의 광기들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에게로 수렴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이 직면한 무질서한 사태의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한다. 위기(집단 내부의 폭력이나 기아와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 시스템의 적응력은 아주 약해지거나 억압받는다.)를 중지시키고 공동체를 자기 파멸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공동체의 분노와 원한 모두를 모방에 의해 지목되어 만장일치로 채택된 희생양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극심한 폭력에 휘말린 사회는 희생에 의지하여 갈등을 해소하고 희미해진 서로 간의 차이를 다시 정립한다. 희생제의를 통한 해결 이후에도 경쟁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데, 그것은 갈등의 불씨가 제대로 꺼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새로운 욕망을 들쑤시는 새로운 대상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인류 문화 기원의 순간에는 이런 살해가 있었고, 그 살해는 집단적이었으며, 그때 죽은 무고한 희생양은 공동체 전체에 의해 살해되었다. 문화의 기원은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에 근거해 있으며, 인간 사회의 초창기 제도들은 이 메커니즘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되풀이로 이루어졌다.


신화는 이런 희생양이 죄가 있다고 말한다.(오이디푸스는 친부 살해와 근친상간으로 추방된다)

구약과 복음서는 희생양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 신화가 무의식 중에 비틀고 뒤틀어놓았던 것을 다시 세운다.


“신화에서는 언제나 폭력을 행사한 자가 옳고 그 희생양이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다. 구약과 복음서에서는 폭력을 행한 자가 잘못이고 희생양이 옳다.”


인지 불능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희생양이 정말로 유죄이며, 그래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환상을 품게 된다. 희생양을 갖기 위해서는 진실을 봐서는 안되고, 그리하여 그 희생물을 희생양으로 표현해서도 안 되고, 신화가 그렇게 하고 있듯이 정당하게 처벌받은 사람으로 표현해야 한다.


복음서는 예수의 무고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 설립 이래로 있어 왔던 모든 박해자들의 거짓말 그리고 거기에 기초한 만장일치적인 폭력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모든 희생양의 무고함을 같이 드러낸다.

(이 세상의 사회질서는 성스러움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세계에 의해, 희생 제의를 통해 지배하고 있는 악마 같은 충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박해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탐욕이다.)


사회는 많은 개인들이 있다 보니 거기에 모방적 폭력이 없을 수가 없다. 사탄은 모방 시스템 그 자체이며, 이 시스템이 인간관계를 지배한다. 모방은 자유를 가르치는데 비교의 대상이 없을 만큼 대단한 지혜에 순종하는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모방하거나 경쟁 정신으로 신을 모방하거나 간에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택과 관련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폭력 쪽을 선택해왔다.("인간 욕망이 언제나 모방적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며, 또 욕망의 모방적 성질에서 나오는 폭력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평화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개인이 다 모방적 욕망에 무방비 상태로 끌려다니는 것은 아니다.


개종은 우리를 스캔들과 영원한 불만족의 악순환 속에 빠뜨리는 나쁜 유형의 모델을 그런 줄을 모른 채 모방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유는 인간의 모방적 메커니즘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글은 <문화의 기원>에서 구절을 마음 가는 대로 뽑은 발췌에 가깝습니다.(내용이 좋아서요)

코시국인 요즘은 한 사람의 희생양보다는 주부, 자영업자, 직장인, 학생, 아이 등 모든 사람이 다 희생양에 가까운 듯합니다. 집단 내부의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개인의 심리 시스템의 적응력은 약해지거나 억업받는다지요. 혼란이 가중되고 불안이 증폭되는 시기. 무고한 희생양이 되지도 말고, 무고한 희생양에게 비난도 말며, 희생양을 잡아 공격하는 박해자가 아니기를 바래봅니다. 깊어가는 가을 고운 색으로 물드는 데 지체됨이 없는 나무처럼 어떤 상황이라도 고운 색으로 물드는 데 지체됨이 없는 사람이기를 세상이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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