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을 꿈꾸는 이유는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수박 향기>에서는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유괴범에게라도 잡혀가길 원한다. 타인이 폭력이 되는 그 어디쯤에서는 수박 향기도 서늘하다.
무라카미 류 <최후의 가족>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의 다른 면은 권위적이며
성실하고 다정한 어머니의 다른 면은 지배적이다. 성실하고 우등생인 딸은 가족에게 벗어나길 원하고 성실하고 순종적인 아들은 히키코모리가 돼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이 홀로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런 생각이야말로 지옥이다. 환상은 일반화될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작가는 홀로 지옥에 있다가 그 지옥을 탈출한 사람 같기도 하다. 책 속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미래>에서는 아이들이 어른이나 가족들로부터 심각한 학대를 당하고 있다. 학대당하는 아이 두 명이 함께 살인을 계획할 정도로.
앗코, 힘든 일 있으면 뭐든지 나한테 말해, 하고 끌어안았을 때는 뭐랄까, 진심으로 싫었어. 야, 착한 아이라는 티를 내려고 돌아가신 우리 파파를 이용하지 마, 나를 불쌍한 아이로 몰아가지 말라고.
미나토 가나에 <미래>에서
아키코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같은 반 미노리가 아키코를 위로할 때 아키코가 하는 생각이다. 아키코의 생각은 맞다. 미노리는 아키코의 슬픔을 이용해서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소풍날 아키코의 도시락을 보며 “어, 돌아가신 거 엄마였나?”말할 수 있는 아이니까.(아키코의 도시락이 형편없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아키코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줄 수 없는 형편이라 직접 준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수박 향기>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억압하는 존재가 된다. 무라카미 류 <최후의 가족> 가족에서는 의무감으로 지내던 가족 구성원들이 아들이 히키코모리가 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위기로 해체되는 가족들은 의외의 편안함을 발견한다. 가족이 원하는 것(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지 않게 되면서.
타인이라는 존재는 폭력적일 때가 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심각한 정서상의 문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이유도 타인으로 가능하다. <최후의 가족>에서는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변하면서 히키코모리 아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십 대 때 발병한 조현병 경험을 소설로 쓴 조앤 그린버그의 <난 너에게 장미정원을 약속하지 않았어> 또한 데버러의 망상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의사의 영향이 치유에 크게 작용한다.(권위적인 의사를 만났을 때 데버러의 증상은 심해진다.) 미나토 가나에의 <미래>에서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으로 일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폭력 속에 처한 아키코에게 아리사라는 친구가 있다.(미노리는 악의에 가까운 행동으로 아키코를 괴롭힌다.) 폭력적인 존재로서의 타인이 있고 구원적인 존재로서의 타인이 있다.
여섯 살 아이가 뒤로 주춤주춤 밀리며 선생에 의해 떠밀리는 포털에 뜬 학대 동영상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