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와 서준 이야기

by 북남북녀

매캐한 연기를 피해 집으로 들어갔을 때 유하는 청소 중이었다. 왜 벌써 들어와요?

바퀴벌레 붙은 걸레를 유하가 들어 올렸다. 글쎄, 방바닥을 닦는데 이게 나왔어요. 보여요?

다 큰 청년이 방 하나도 청소하지 못하고 뭐하고 다니는 거예요. 으, 냄새. 또 운동했어요? 유하는 내게 묻은 냄새를 털어내겠다는 듯 내 어깨를 손으로 탁탁 쳤다.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바퀴벌레가 어디서 나왔는데, 내 방에 가서 알려줘. 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유하를 방으로 이끌었다. 침대 밑 쪽에 있었는데. 오늘 내가 구석구석 닦았거든요. 최루탄을 피해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 신문기사에 나갈 봉사활동이라도 나갔을 테고 아버지야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며 국회에 나가 있을 테지. 어떻게 하면 독재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방법을 골몰하면서.


여기예요 유하가 손짓하는 순간 나는 뒤에서 유하를 안았다. 사랑이었는지 호기심이었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매캐한 냄새 속으로 싱그런 향이 훅 들어왔다. 처음 맡는 향기였다. 알 수 없는 풀꽃향기. 숲 속에서 비 오는 날이나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몸에서 나는 사람이었다. 숨 쉬는 게 편안했다. 괜찮아 유하에게 물었다. 사랑하니까 괜찮아요, 사랑하니까 창피하지 않아요. 그 말에 내 몸도 편안해졌다. 나도 괜찮았다. 유하와 있으면 항상 괜찮을 거 같았다. 유하는 자기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나는 마음이 반짝거리니까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요. 나는 그 말을 하는 유하의 작은 입과 작은 손을 바라봤다. 유하의 온몸에서 빛이 발산되는듯해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유하가 시든 닭 모양 일한다고 투덜댔다. 구역질을 하는 유하의 얼굴이 창백했다. 유하와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았다. 쿵쿵 심장소리가 들렸다. 유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 사이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께 잘 말해볼게. 이제 말할 때가 된 거야. 유하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유하의 떨림과 두려움이 내게 전달됐다.


당장 유학 가. 나는 무릎을 꿇었다. 울면서 빌었다. 유하만 내 곁에 있게 해 달라고. 그거면 된다고. 어머니는 내 눈물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나는 외국으로 보내졌다. 공부를 하는 건지 약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나는 모른다.


몽롱한 의식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시골에서 자라는 먼 친척의 아이를 맡았다고 어머니가 말했으나 유하와 내 아이인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아이가 눈앞에 가시인 것처럼 행동했다. 아이의 행동에 진절머리를 내며 몰아붙였다. 아이가 뛰다가 소파에 부딪혔다. 어머니는 옆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너는 왜 맨날 말썽이냐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는 두려운 눈으로 뒤로 주춤거리면서도 어머니보다 먼저 손을 뻗어 어머니 몸을 쳤다. 어머니가 화가 나서 더 큰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아이는 뒤로 밀리면서도 어머니의 몸을 작은 손으로 밀쳐냈다. 어머니를 막기에 아이의 힘은 한참 부족했으나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아이는 울면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얼른 아이를 들어 올렸다.


이 아이는 괜찮을 거야, 너와 나 같지 않으니까. 유하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에게 가기 위한 핑계라도 안심했다. 괴롭히는 할머니를 때릴 수 있는 아이 멋지지 않니. 우리는 해보지 못한 거잖아. 우리는 왜 그렇게 고분고분한 사람들이었을까. 너를 잃어버리기보다는 저항하는 것이 나았을 텐데. 참으면, 잘 참으면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잘 참아내기만 한다면 우리 사랑이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진짜였으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짜가 아니었으니까. 묵묵히 참고 견디면 돌아갈 거라 생각했어. 유하야,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거였을 거야. 사랑하는 만큼 싸우지 못한 거. 진짜 사랑은 싸워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거. 우리 아이는 지금부터 그걸 알고 있으니 분명 괜찮을 거야, 그러니 유하야 내가 너에게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고 혼내지는 말아줘. 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 너를 보지 못하는 세상을 떠나고 싶어. 몽롱하게 하는 약도 이제 소용이 없어. 네가 보고 싶을 뿐이야. 한 번 만이라도 너를 다시 보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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