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김치찌개와 만두그라탕

by 북남북녀

후드득, 후드득 오후 햇살이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창밖 나무의 초록 잎이 그 아이의 웃음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흔들린다. 찰싹, 찰싹 파도치는 소리 같다. 나뭇잎들도 제정신이 아니네, 생각하며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있다. 1분단 맨 첫째 줄에 앉은 그 아이가 뒤돌아서 무슨 말인가를 한다.


귀밑까지 오는 연한 갈색 머리의 가벼운 질감의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흔들리고 하얀 얼굴에는 물방울이 튀는 듯한 촉촉함이 배어 있다. 하복의 교복 칼라가 반짝이는 하얀 빛을 뿜어내고 그 아이가 작은 이를 빛내며 웃자 후드득, 후드득 햇살이 물방울처럼 쏟아져 내린다. 찰싹이는 파도 소리가 귓가를 울리며 청아한 공기가 교실에 가득 찬다.


우리 엄마, 아빠 이틀 동안 안 들어오고 있어. 이혼한데. 짝꿍 이예은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진다. 스르륵. 엉덩이를 연체동물처럼 앞으로 빼 흐느적거리는 곰 같은 이예은. 힘 빠진 이예은. 밥 주는 사람이 없어. 배고파 죽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이예은은 눕는 듯한 자세로 두 팔을 달랑달랑 흔든다. 코끼리처럼 두툼한 다리와 곰 같은 등치의 이예은이 눈물도 흘리지 않고 눈물 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 앞에서는 초록 잎의 찰싹거림이 요란한데.


책가방 싸는 소리로 부산한 교실. 햇살 흘리며 다니는 아이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오늘 옷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연체동물처럼 늘어져 있던 곰 같은 이예은이 내 손을 잡는다. 오늘 예은이랑 들릴 데가 있어서.


후드득, 후드득 햇살 떨어뜨리며 그 아이가 웃는다. 뒤돌아 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른 햇살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햇살 방울을 몰고 다니는 아이네, 생각하며 이예은의 손에서 내 손을 뺀다. 가자, 우리도.


아무도 모르는 대학교 강당에서 키 작은 아이가 말을 건다. 얼핏 보면 검고 작은 가방을 멘 모습이 초등학생 같다. 보라색 벨벳 트레이닝 세트로 몸을 감싼 아이가 어디 사세요 묻는다.


입학식 날 내가 너한테 말 건 이유 알아, 학교 앞 분식집 테이블 위에 꽁치 김치찌개와 만두 그라탕이 놓일 때 보라색 벨벳 트레이닝이 묻는다.

아니.

만만해 보였거든. 나는 긴장하면 손을 떠는데 너한테는 말 걸 수 있겠더라. 기분 나빠?

뭐, 상관없잖아. 너 말고도 그런 사람 많았을걸. 고등학교 때도 피구 할 때 내가 공을 잡으니까 공 던진 애가 그러더라. 쟤 못 잡을 거 같이 생겨서 공을 잡네, 에이.

나도 정말 잡고 싶지 않았는데. 빨리 죽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 하하.

안 웃겨?

역시. 보라색 벨벳 트레이닝이 꽁치김치찌개 냄비에 밥 한 공기를 통째로 넣는다. 한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에 넣는다. 생선 향 나는 찌개가 좋더라, 몸에 좋은 걸 먹어야지.

나는 모짜렐라 치즈가 잔뜩 올려진 만두 하나를 집어 입가로 가져간다. 만두 한 입을 물려는데 낙태했어, 어디선가 울리는 소리. 아, 뜨거워 입을 댄다. 냉면을 시킬걸. 이 뜨거운 날 만두 그라탕이라니.

뭐, 상관없잖아. 후드득, 후드득 햇살 쏟아지는 여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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