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이 완전함이다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을 읽고

by 북남북녀

언니는 조카(아들) 방문을 열었다. 아들이 방에 없었다. 이상하지 싶은데 어떤 냄새가 맡아졌다. 그것은 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기호품의 냄새였다. 언니는 본능적으로 베란다로 향했다. 아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허락되지 않는 기호품의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라는 질문에 어떻게 하기는 혼쭐을 내고 또 한 번 걸리면 금연학교에 넣을 거라는 주의를 줬지. 다시는 하지 않기로 약속도 받고 가 오랜만에 만난 자매들의 대화였다. 파란 하늘 밑에 동네 산을 오르고 빨간 주꾸미 볶음 앞에 어른 기호 식품인 노란색 음료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있을 때다.


“큭, 이런 맛이구나. 별 맛도 아닌데.”

“그건 피우는 게 아니야, 속담배를 펴야지.”

“속담배는 또 뭐야.”

“이렇게 깊숙이 들이마시는 거.”

“이렇게?”

“아니, 다시 한번 해봐.”

“이렇게?”

“아니라니까.”


남편은 속담배라고 했지만 나는 남편과 내 담배 피우는 차이점이 무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됐어, 맛도 없는데 그만할래. 몇 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의 남편과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와 인연이 닿은 나는 술, 담배는 멀리하는 생활을 했다.


가끔씩 담배를 한번 피워보고 싶었어라는 남편의 말에 나도 그런데 하면서 편의점에 뛰어가 라이터 하나와 하얀색 담배 한 갑을 샀다. 검지와 중지에 담배 한 대를 끼우고서 어때 물으며 킥킥 웃고, 뭐야 이 맛은 하면서 또 킥킥 웃었다.신혼시절의 추억이다.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 빼기를 해야 한다는 신유나(사이코패스라고 부를 수 있는)가 등장한다. 신유나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허용하는 반응만 원한다.(타인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곱 살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녀의 세상은 견고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세상 안쪽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 그녀의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조짐이 보이면(다른 욕구가 보이면) 폭력을 쓰고 벌을 주고 자해도 한다. 상대방이 누구든지 자신의 통제권 밖으로 나가는 것은(다른 욕구를 품는 것) 허용하지 않는다. 딸은 엄마가 원하는 대답이나 행동을 하려고 애쓰고 남편도 그렇다.(주변인들은 자신의 욕구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신유나로 억압당한다.)


아이가 존재하기 전에 로망이 있었다면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거였다. 집에서도 온 가족이 책 읽는 장면을 상상했다. 현실은 아이는 영상을 보고 나는 책을 읽으며 소리가 크니 볼륨 좀 줄여줄래, 가 됐다. 영상 보는 시간으로 한 번씩 다툼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은 상충되는 욕구들(흡연, 영상 시간 등)로 다툼과 갈등 속에 빠질 수 있으나 이것이 오히려 건강한 상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표현하며 그 욕구가 표면에 등장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스트레스 상황일 수는 있으나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건강한 타협점을 향해 협의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종교생활을 위해 금지하고 있던 것을 어느 순간에는 하고야 마는 순간이 오듯이 욕구라는 것은 금지하면 금지할수록 더 커져가는 성질이 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성질도.(사이코패스는 이런 타인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욕구까지도 관여하려 한다.)


욕구는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만족하기보다는 또 다른 욕구가 생겨나기에 완전할 수가 없다. 욕구는 필연적으로 결핍을 안고 있다. 이런 속성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역시 결핍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완전한 행복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해나가는 신유나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 그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한 완전한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불완전함이 완전함이다. 이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 내 안의 사이코패스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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