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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는 어긋남이다

에쿠니 가오리 <빨간 장화>를 읽고

by 북남북녀

김치와 숙주나물과 두부와 당면이 섞인 빨간 만두소를 몇 번이나 퍼먹었다.

고기가 들어있지 않아 생으로 먹어도 무해한 맛.

만두를 빚기 전에 다 먹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먹고도 만둣국을 끓일 때면 남은 만두소를 국물에 투하했다.

작게 잘린 만두소가 투명한 국물을 선홍색으로 물들이고,

붉고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개운함이 입 속에 가득했다.

두부의 부드러움과, 숙주의 나긋나긋함과 당면의 몽글몽글한 촉감의 만두 한 입.


만두를 주문한다.

한 입 베어 물면 음, 이 맛이 아닌데.

버릴 수는 없고.


음, 이 맛은 아닌데.


빨간 장화는 어긋남이다.

음, 이 맛이 아닌데.

버릴 수는 없고.

꾸역꾸역 먹어보지만, 이 맛은 아닌데.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는 인물은 행복하지 않다.

고독하고 외로운 ‘자기’만 있다.

그러기에 '자기'아닌 것들과 충돌(불협화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이 끊이지 않는다.

충돌이 일으키는 여러 색의 자잘한 불꽃들.

그 불꽃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


*"불협화음, 그것은 단조로운 화음과 견주어 얼마나 매력적인가"


만두를 주문한다.

한 입 베어 물면 음, 이 맛이 아닌데.

버릴 수는 없고.

음, 이 맛은 아닌데.


다 이렇지 않아요, 내가 좀 유별 난가 갸우뚱한 고갯짓.



*에쿠니 가오리 <빨간 장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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