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의 생각으로
전군표 <효옥>, 송명희 <표>를 읽고
혜린: 이 사람 이렇게 보내는 걸로 뭐가 해결됐어?
우석: 아직은 아무것도
드라마 <모래시계> 중에서
모래시계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세상에 많은 기대를 걸면 안 된다고, 뭔가를 변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정의를 위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친구에게 죄를 물면서 사형으로 밀어 넣는 개인의 비극은 없을 듯싶어서.
<효옥>은 노비가 된 성삼문(사육신)의 딸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은 다른 선비들과 뜻을 모아 역모를 도모한다. 역모는 삼대를 멸하는 중죄로 취급된다. 만약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역모를 일으킨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 당하고 여자들은 노비가 되어야 한다. 성삼문과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은 집안을 멸족시킬 수 있는 역모를 도모하면서 아들들은 죽임 당하고 아내와 딸은 노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왜 남의 집안 권력다툼에 자기 집안사람들을 모두 바치려는 걸까.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성계의 반란으로 세워졌는데. 어린 단종의 비극은 안타까운 일이나 정통이란 것은 힘 있는 자가 그 힘으로 빼앗아 시간이 흐르면 ‘정통’이 되는 게 아닌가. 그 ‘정통’을 위하여 온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충절’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통’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족들은 화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텐데.
송명희 시인의 <표>에서는 칩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칩을 몸속에 삽입하면 그 칩에 의해 조종받게 되고 폭력과 살인에 무감해진다. 칩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를 고소하고 죽이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게 된다. 기독교적 사고와 상관없이 칩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생각을 했다. 칩에 중요성이 있다기보다는 인간성 상실이 환난의 시대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백신 기사에 백신을 맞은 사람과 맞지 않은 사람들이 논쟁을 한다. 백신 맞은 사람과 맞지 않은 사람들로 분리된다. 백신을 맞고, 맞지 않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분리하고 고소하는 마음을 품고, 배척을 당연시하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사람 이렇게 보내는 걸로 뭐가 해결됐어?”
누군가 누구를 보내는 것으로, 약한 사람들의 희생을 조성하는 것으로 의를 이루는 사회가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