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간장, 아이들 장갑, 수면 양말. 이번 달 구매할 물품을 적는다. 싱크대 옆 식탁 언제나 앉는 자리다. 식탁 위에 달린 하얀색 조명이 어두운 공간을 밝게 한다. 이 집에서의 시간이 일 년 반이 지나고 있으니 새벽마다 책을 읽도록 빛을 밝혀주는 이 조명과도 일 년 반쯤 시간을 보냈다. 이사 와서 식탁 조명을 처음 봤을 때 무슨 조명이 이리 넓적하지,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노란색이나 하얀색에 작고 둥그스름하면서 은은한 주황빛을 내는 소박한 느낌의 조명이 내가 생각해온 조명이다.
첫 번째 주인이 오 년 살고, 두 번째 주인이 부분 수리하고 칠 년 살았다. 부분 수리조차 하지 않고 세 번째로 우리 가족이 이 집에 들어왔다. 이곳, 저곳에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중 하나가 식탁조명이다. 일상적으로 보던 조명이나, 머릿속으로 그려온 조명과는 달라 네모지고 넓적한 모양이 볼 때마다 이상했다. 기능적인 부분만 부각한 디자인 같은데, 불만도 품었다. 멀쩡하게 작동하는 것을 무작정 뗄 수도 없고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남편의 의견으로 (‘네가 더 이상해’) 임시방편으로 전부터 사용해오던 작은 스탠드를 책장 위에 올려두고 사용했다.
새벽마다 스탠드의 콘센트를 꽂고 빼고 하는 것도 일이라 지금은 스탠드는 치우고 식탁 조명을 사용한다. 사용하다 보니 식탁 조명도 제법 괜찮다. 밝은 빛이 넓게 잘 퍼져서 눈도 덜 침침하고 넓적한 부분을 천으로 쓱쓱 닦아주면 되니 청소도 간단하다. 십 년 넘는 시간을 한자리에서 버텨왔겠네. 비행접시를 닮은 것이 귀여운데,라고 요즘은 생각한다.
남편과 연애 시절 심각하게 싸운 적이 있다. 핸드폰을 끄고 헤어지리라 결심했다.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다. 자리에 누웠는데 얼굴이 찡그려졌다. 눈물도 맺혔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내 것만은 아닌 거 같았다. 울듯이 찡그린 얼굴로 남편이 이렇겠구나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실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건가, 만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순간으로 기억한다. 결혼 십 년이 넘어가며 이렇게 저렇게 정이 들며 지금은 살고 있다.
교복 입기 전부터 만난 친구들도 몇 명 있다. 남편보다 먼저 만났으니 십 년이 훌쩍 넘게 알아왔다. 거리는 멀어지고 친구들과 내 모습은 변해가지만 내 한 부분은 친구들을 떠나서 설명될 수 없다. 수없는 다툼과 상처라는 위기에도 이렇게 저렇게 정이 들며 한 시기를 지나왔다.
시간이라는 물살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 같은 존재가 나인 듯싶다. 좋음이나 나쁨과는 상관없이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기도 하면서 이쪽으로, 저쪽으로 흘러 다녔다.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지 않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정이 드는 과정이 내 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