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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이기

김훈 <라면을 끓이며>

by 북남북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점심은 라면으로 결정했다. 새 냄비에 물을 부으려니 콩나물과 두부 건더기가 보이는 된장국이 남아 있다. 그래, 된장라면. 된장국 냄비에 물을 붓는다. 몇 컵? 모른다. 대충 라면 하나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물 부은 된장국을 끓인다. 뚜껑을 열고 봉지 째 반으로 쪼갠 라면을 냄비에 넣는다. 뚜껑을 덮는다.


라면 하나는 부족 한데. 더 넣을 것을 찾으려 냉장고를 뒤적인다. 냉장고 구석에 어묵이 보인다. 끓고 있는 라면 냄비 뚜껑을 열고 냄비 위에서 동그랗고 긴 어묵을 듬성듬성 가위로 자른다. 어묵이 라면 위로 퐁당퐁당 떨어진다. 하는 김에 달걀도 꺼낸다. 냄비 모서리에 톡 깨서 끓고 있는 라면 속에 달걀을 넣는다. 젓가락으로 노른자가 터지지 않을 만큼 살살 저은 다음 뚜껑을 닫는다.


라면이 한소끔 끓어오른다. 파를 넣으려고 하는데 씻어놓은 파가 없다. 생략하자. 라면이 이미 끓고 있다. 아이와 같이 먹어야 하니 면이 완전히 익어야 한다. 팔팔 끓인다. 완성! 한 젓가락 맛을 본다. 된장 향만 살짝 난다. 수프를 안 넣었네. 소량의 수프를 라면 위에 뿌린다.(염분을 낮추고 아이도 생각해야 하니까) 한 번 더 끓인 후 불을 끈다.


커다란 대접을 꺼낸다. 생수를 반 붓는다. 면만 꺼내 생수에 씻는다. 씻은 면을 아이 그릇에 옮겨 담는다. 생수를 버리고 남은 라면과 건더기와 국물을 대접에 붓는다.


김훈 님은 말했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고.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라고.


국물인지, 면인지 모를 내 대접의 라면을 본다. 국물 맛인지 밀가루 맛인지 모를 라면을 후루룩 입속으로 넣는다. 면이 불으면, 국물이 투박하고 걸쭉해져서 면뿐 아니라 국물까지 망친다는데.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왜?”

“엄마가 좋으니까”

“엄마도 우리 나도 좋아하는데.”

라면 그릇을 앞에 두고 우리는 헤헤 웃는다.

흐린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 김훈 님의 라면 조리법>


1. 냄비에 물 700ml 붓는다: 넉넉하게 부어야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 깊이, 삽시간에 익는다.

센 불로 3분 이내 끓인다: 가정용 도시가스보다 야외용 버너를 추천한다.(화력의 차이)


2. 국물과 면의 조화(별 다섯, 가장 중요함)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3. 대파를 기본으로, 분말수프를 보조로.

-검지손가락만 한 하얀 밑동 대파 10개 정도를 세로로 길게 쪼개 놓는다.

-2분쯤 끓을 때 대파를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은 다음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1분~1분 30초 더 끓인다:대파는 국물에 단맛과 청량감을 주면서 공업적 질감의 라면 맛을 순화시킨다.


4. 달걀을 넣는다.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섞어놓는다.

-불을 끈 후,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에 넣는다: 끓을 때 넣으면 달걀이 굳어져서 국물과 섞이지 않는다.

-달걀을 젓가락으로 젓는다: 달걀이 반쯤 익은 상태에서 국물 속으로 스민다.

-재빨리 뚜껑을 닫은 후 30초 기다렸다 먹는다: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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