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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by 북남북녀

엉망진창 섬에는 괴물들이 산다. 괴물들은 서로 시비 걸고 싸우는 게 일이다. 어느 날 섬에 꽃 하나가 피어나고 괴물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당황한다.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공황 속에 빠진 괴물들은 더 깊은 싸움으로 들어가 모두 사라진다. 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척박한 환경이 괴물을 괴물이 되게 했을지 모른다. 괴물은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본래의 자신에서 조금씩 변형된 존재다. 환경에 맞춘 형태로 변형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레이코는 밤마다 병원으로 전화한다. 당직실의 의사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치사량으로는 부족할 수면제를 먹고 응급실로 실려 간다. 난동을 부리고 험한 말을 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개성이라고 보기에는 과한 행동이다.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니시다 마사키(정신과 의사이자 박사)는‘경계성 인격장애’라고 레이코를 진단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병적인 특성을 가진다. 유년기의 폭력이나 학대 등 심적 외상(트라우마)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훨씬 예민하게 감지하게 됐다고.


세월호 생존자인 아이가 자기 선생님 장례식장에 갔다. 아이가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고 씩 웃는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 보기가 민망하다. 장례식장에서 웃는 아이가 용서가 안된다. 이런 감정 마비는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정혜신 정신 전문의는 말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비난받을 행동이 여전히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틀을 가지고 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폭력이 돼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중에서


심적 고통에 있는 사람은 틀이라는 것이 무너진 상태다.(틀이라는 것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이 깊은 상태, 일상적이지 않은 고통 일수 있다.) 깊은 물속에서 숨쉬기조차 힘든 사람에게 일반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일 수 있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일상이 훼손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모습이라고 정혜신 전문의는 말한다.


‘경계성 인격장애’인 사람이 나이를 먹고 배우자를 얻으면 차분함을 되찾고 치료가 필요 없을 만큼 회복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과도한 인식이 둔화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니시다 마사키 저자는 말한다. 이들에게는 심적 외상을 치유해 줄 만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타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엉망진창 섬에는 꽃 하나가 피어났다. 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괴물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것이 애정이었을지 모르겠다. 바라볼 수 없이 기괴한 존재를 무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름다움이자 애정이었을 거라고(괴물들은 사라진다.)




만일 전화 통화 후 나의 동료 직원이 여러 경로를 거쳐

해고 조치된다면 나도 사표를 준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시간에 걸친 전화 통화는 동료 직원의

인내심으로 조용히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퇴근했지만,

동료 직원은 어느 술집으로 다시 출근했을 것이다

다음날 술자리에서 동료 직원은 말했다;

걸려온 전화기에 가득 찬 고함소리의

틈새로 자신이 너무도 좋아하는 브람스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노라고


윤병무 <음악 감상>



도서: <엉망진창 섬> 윌리엄 스타이그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니시다 마사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정혜신,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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