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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종교의 의미

에르네스트 르낭 <예수의 생애>

by 북남북녀

종교는 자궁과 같았다. 그 안에서 헤엄치고 먹고 마시고 놀았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도 모체와도 같은 종교 안에서 편안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바깥에서 이뤄졌고 사랑을 품은 마음은 바깥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눈물 흘리고 애통해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달콤한 말에 빠져들었다. 신적인 사랑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한 처방전이었다.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젊은 성도들의 눈은 성공이라는 단어에 불타올랐다. 의사가 돼서, 변호사가 돼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개인의 성취욕에 도취된 신앙 같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앞에서 성도들과 악수하는 목사님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중시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는 예수가 싫었다. 사두개인은 부와 권세에 집착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었다. 이들은 예수가 질서를 파괴하여 자신들의 부과 권세가 사라질 것을 염려했다. 부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악의가 차올랐다.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라도 죽어야 하는 것이 세상이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수난을 당했다.

예수는 ‘사랑에 취하여 포로의 마음을 묶는 무거운 사슬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아들로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거의 절대적 정신주의와, 낡은 세계의 모습이 바야흐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그의 부동의 견해는 그로 하여금 심정에 관한 일만을 좋아하게 했다.”


겉옷은 언젠가 반납해야 할 때가 온다. 깨끗하게 입고 잘 정리해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듯이 반납해야 할 때가.


신성을 배제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한 예수는 고뇌하고 분노하고 마음 둘 곳 없는 개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신학적으로는 논란의 요소가 있겠으나) 예수의 숨결을 실재하듯이 보여준 <예수의 생애>는 마음으로의 초청이자(“혈통이 아니라 마음에 세워진 인류의 종교가 창설되었다.”)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직장 상사로 있는 곳이 세상이라 하더라도 겉옷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함을 상기시켰다.


“지금도 날마다 세계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는 이 숭고한 인물을 신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이것은 예수가 신성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거나 신과 일치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류로 하여금 신을 향한 최대의 걸음을 내딛게 한 개인이라는 의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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