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수어지는 것들

오스카 루이스 <산체스네 아이들>

by 북남북녀


몇 번의 시도 끝에 가난한 사람들은 알게 된다.

자신이 상황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식구들을 대하는 일은 자신의 무능을 마주 보게 되는 일이 되고, 그것은 괴로움으로 변하게 된다.


실의, 절망이라는(자신에 대한) 괴로움은 술, 도박, 폭력, 방치, 유기, 게으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때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은 게으름과 연결됐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가 개인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산체스네 아이들>은 이 시선을 반박한다. 멕시코시티의 빈곤층 가족 구성원(아버지, 네 자녀)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며 가난에 어떠한 구조가 얽혀있는지 보여준다.


“나의 본성은 어둡다. 나는 죽음과 폭력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방에 햇빛이 들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루시아 벌린)


해는 온 세상을 두루두루 비춘다.

가난은 해의 존재를 잊게 만든다.


사랑하려는(살아가려는) 시도는 벽에 부딪치고

희망으로 꿈꾸는 미래는 현실의 제약 앞에 사라져 간다.


자신을, 인간관계를, 선한 쪽으로 기울여는 마음을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자기 파괴의 길을 걷게 한다.


“무서워, 소중하고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루시아 벌린)


소중하고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긴장이 여러 가지 상황을(파국에 가까운) 만들어낸다.


‘절대적 빈곤’이라는 말보다는 ‘상대적 빈곤’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듣는 요즘도 소중한 무언가는 부서지고 있다.


결핍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산체스네 아이들>은 보여준다.



“사람이란 세상을 다스리는 그 어떤 신비한 손에 조종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일은 계획된 대로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다. 아무나 따말레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따말레를 먹도록 태어난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좀 모아지면 병마가 찾아온다는 미신마저 갖게 됐다. 바로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나 같은 놈은 어차피 가난하게 살게끔 태어난 것이라 아무리 몸부림치며 잘 살아보려고 악을 써봤자 가난을 면할 수 없다는 운명론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겨우 연명이나 할 정도의 여유만을 주는 것이 아닌가.”










keyword
북남북녀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프로필
구독자 532
작가의 이전글앙상한 겨울 풍경 같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