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겨울 풍경 같은 시간
최소한의 삶을 위하여
직장을 찾는다면 덜 괴롭힐 곳을 선택하고
육아를 한다면 덜 해로운 게 어느 것인지를 고민한다.
“왜 화장을 안 했지?”면접관이 물었다. 화장을 안 하지는 않았는데, 옅게 했을 뿐.
3교대 근무인데 화장은 필수다. 밤 근무 때 당직자가 다니면서 화장과 복장을 평가서에 기입한다고. 어깨를 톡톡 치면서 화장을 더 신경 쓰면 좋겠어, 다음 주부터 나와. 이 회사에 입사할 경우 일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인 스타일(내게는 불필요해 보이는)로 괴로움을 안길 것은 뻔한 일. 급여가 높고 인지도가 있으며 다니기 편한 곳에 위치하나 내가 선택한 곳은 외진 곳에 급여는 적으며 건물도 허름한 곳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많았으나 덜 괴롭힐 곳을 고민하고 선택한 곳이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달콤한 간식류를 주는 것과 울리는 일, 핸드폰을 주는 일과 울리는 것. 상황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나는 울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달콤한 간식류를 소량이라도 주고 삼십 분 만이라도 핸드폰을 보게 한다. 엄마인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기 원하기 때문이다. ‘운다’는 요소에는 결핍이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는 아이는 끔찍한 세상 속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기에. 내 입장에서는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결정이 아이 입장에서는 어두운 기운을 형성하여 평생 가는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마음의 작용에 대해 무지하고 내 아이라도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기에 아이들의 ‘지금’이라는 순간에 집중한다.
성장 속도는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인데 표준적인 질서 안으로 흡수되는 시간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개별적인 사랑을 넘치게 받아야 할 시기에 한 명의 원아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성장 속도보다 빠른 통제는 과한 행동을 불러오지 않을까. 아이들도 자신들이 살 길을 찾기는 해야 할 테니.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자신을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쉽게 읽는 백범 일지>에서)
사람은 그대로인 부분이 많은데 문명은 급속하게 발달하여 통제되는 사회로 흡수되는 시간도 단축되는 듯하다. 기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쓸데없이 낭비되는 행동을 줄이려 애를 쓰게 된다. 마음이란 것 혹은 본성이란 것은 그렇지 못한데. 잘 살아내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불러들이는 구조다.
살고 싶은 방을 떠올리면 앉은뱅이 책상 하나, 구석에 이부자리한 채인 공간이 떠오른다.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듯 사람들은 떠나가고 물건들은 필요한 곳으로 옮겨가는 때가 오겠지. 봄의 활기조차 피로해지는 때는 겨울이 편안하다. 앙상한 겨울 풍경 같은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