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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들어주세요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by 북남북녀

알아서 들어주세요, 라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글을 쓰며 알아간다. 설명하기보다는 축약이나 생략 어법을 사용하고 말하지 않은 부분은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예측을 한다. 여기에서 비극은 상대방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 골은 상처라고 불리는 것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왜 축약이나 생략 어법을 사용하는 걸까 생각하니 그곳에는 부끄러움 혹은 수치감이라 불리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모호하고 난해한 책을 단순화시키는 걸 수도 있으나 주인공인 관리가 지하에서 나오지 않는 까닭은 수치감이 아닐까 싶었다. 이 관리는 밥벌이일 뿐인 관청 일을 그만두는 기회가 생기자마자(친척으로부터의 유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이십 년 쯤 지속한다. 삐딱하고 민감하고 혼란스럽고 고독하고 기괴한 지하 인간이 된 그는 젊은 시절의 경험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동창들의 모임에 억지로 끼어들어 추태를 부린 일과(알 수 없는 오기로) 마음이 가는 창녀를 모욕하려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모욕을 당하고 애정관계로 발전했을지도 모를, 삶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서 놓친 일이다. 지하 인간은 가식 없고 교양 있고 지적이며 고결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나 외부에서의 그는 소심하고 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알아 (다른 사람들은 그런 차이 정도는 스스로를 기만하며 관계에 뛰어들지만) 기만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데 비극이 있다.


그는 고아로서 애정관계에 있어본 적이 없다. 친척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온갖 꾸지람 속에서 자라나 자신에게 침잠하게 된 내면적 인간으로 성장했다. 기회가 있더라도 삶으로 뛰어들지 못하고(시도는 했으나) 불안한 내면에 갇혀 지하 인간으로 살길 선택했다. 그의 예민한 자의식은 다른 사람들처럼 기만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관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허약한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한다.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사람, 지극한 회의에 빠져 지하에서 나올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삶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자신에게 붙들린 사람은 어떻게 자신에게서 놓여나야 하는 걸까.(삶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의 내면에는 심술이 가득해지는데)


단순한 의견일 수 있으나 나는 지하 인간에게 하녀가 있었기 때문에 더 권태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손을 움직여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을 직접 처리해간다면 정신의 민감성은 떨어지더라도 괴로움은 중화되리라 생각한다. 정신의 민감성이 떨어지는 것을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분석하고 이론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고독한 것에 의미를 더 두기도 하는 듯하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더라도 육체는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진실로는 지하에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람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강렬하기에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을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 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장정일 <지하 인간>


<지하로부터의 수기> 속 주인공에 대한 건전한 위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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