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김구/도진순<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삼웅<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896년 단발령을 피해 청나라로 출발한 김구 선생은 가는 도중 단발 정지령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성 종로에서 사람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소식도 듣는다. 추이를 더 지켜보기로 한 선생은 발걸음을 돌린다. 치하포 나루터 여관방에서 조선인의 복장을 했으나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이 보이는 사내를 만난다. 지금 있는 장소는 왜인들이 본래의 행색대로 다니는 곳인데(위장할 필요가 없는 곳인데) 수상함을 느낀 선생은 국모(명성왕후)를 시해한 자가 아닐까 의심한다. 직접 시해하지는 않더라도 공범일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저놈을 죽여서 국가의 치욕을 씻으리라. 빈손인데 섣불리 덤볐다가는 내가 당하거나, 도적놈 취급만 받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이 어지러운데 고능선 선생의 교훈이 떠오른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나,
(得樹樊之不足奇)
벼랑에 매달려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
(懸崖撤手丈夫兒)
한낱 도적의 시체로 남게 될까 미리 걱정하다니.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닌가? 죽을 작정으로 생각을 돌리니 백 가지 계책이 떠오른다.
수상한 자를 계단 밑으로 발로 차고 그 자가 떨어뜨린 칼을 주워 김구 선생은 상대방의 목숨을 끊는다. 선생 나이 21세, 치하포 단독 의거이다. 투옥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고종에 의해 형집행정지령이 내려와 생명을 건진다. 탈옥 후 일제의 수사망을 피해 계몽, 교화사업, 구국 운동을 전개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로 들어간다.
1932년 1월 8일 경시청 현관 앞에서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거,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거 뒤에는 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가 있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을 조직해서 미군과 함께 비밀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아메리카합중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적 일본에 항거하는 비밀공작이 시작되었다.”
도노반 장군이 정중하게 선언했다.
김구 선생은 훈련받은 청년들을 미국 잠수함에 태워 대한민국으로 침투시키려 미 육군성과 합작하였는데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실행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했다.
“소련식 공산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공산독재 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독점 자본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무산자를 외롭게 할 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자기 상품 시장화하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신탁통치안에 반대하며 친일세력 척결을 외치고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견제한 김구 선생은 귀국 후 경교장에 머물다가 1946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에 맞아 운명했다.
안두희는 무기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형으로 감형되고 다시 1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옥에서 풀려나 군에 복귀, 고속으로 승진했다. 민족 지도자 암살범의 고속 승진을 한 의원이 문제 제기하자 민간인 신분으로 군납업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성공해 안두희는 부자가 됐다.
1996년 10월 23일 버스 기사 박기서 씨는 안두희의 집으로 찾아가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피살했다.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김삼웅 저자와 2014년 만난 박기서 씨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안두희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원수입니다. 김구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독정부를 세운 이승만 일파가 김구 선생을 암살하자 민심이 7할 이상은 돌아서버린 것이지요. 북한의 김일성이 바로 그 반이승만정서를 자기 지지로 오판하여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온 거지요. 설사 한국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김구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아마 전선으로 달려가 온몸으로 남으로 내려오는 탱크를 막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인민군이 김구 선생을 깔아뭉개고 남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중략)......”
안타깝게도 역사에는 ‘그랬다면’은 소용이 없다. 신탁통치안 반대와 친일세력 척결을 외치며 공산주의 독재를 견제하는 김구 선생을 안두희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는 암살했을지 모른다. 목숨을 걸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힘쓴 선생은 마지막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예수에게는 가룟 유다가, 김구에게는 안두희가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가룟 유다가, 안두희가 되기 때문이다.(마음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장 인간적인 것과 가장 비인간적인 것 사이의 긴장 관계를 이용하여 창조적인 노력으로 영혼을 팽팽히 당겨주어야만 악마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선과 악은 같이 자라나고 서로 팽팽하게 묶여 있어 떼어낼 수 없다. 우리가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균형을 선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에릭 호퍼의 말이다.
안두희는 김구 선생 암살 후 호의호식 살았다. 김구 선생 암살 배후세력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