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쾌한 모모씨

속사정

by 북남북녀

드라이를 할 때면 소리는 몸을, 머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하면 잠깐 멈춘다. 몇 초 지나면 다시 살랑살랑 몸을 움직인다. 저만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초등학교 2학년인 소리는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고 물으면 재미있다나. 학교에서 누구누구는 공부를 잘해라고 얘기한다. 너는 물으면 큰소리로 나도 잘하지,라고 대답한다. 한글 공부하자면 배가 아파서 못 하겠다 하는데 공부를 잘한다니. 소리의 공부 기준이 뭘까 궁금해진다.


쇼핑몰에 가면 소리는 꼭 왕관 머리띠를 사자고 한다. 왕관 머리띠에 구슬 달린 것, 긴 망사가 달린 것, 왕관이 큰 것, 작은 것, 큐빅 박힌 것. 집에는 이미 네다섯 개 왕관 머리띠가 있다. 소리의 간절한 눈빛에 오늘만이야, 말하고 비슷하지만 또 다른 왕관 머리띠 하나를 산다. 소리는 새 머리띠를 쓰고 거울을 보면서 아, 귀여워 말한다. 자기 자신을 향해.


이 장면 때문에 나는 소리에게 또 하나의 머리띠를 허락하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이 귀여워 보이는 순간은 흔치 않으니까.(소리는 어느 때든 스스로를 굉장히 귀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손님들의 방문으로 집이 시끌시끌할 때, 소리는 앞에 나가 춤을 춘다. 나름의 웨이브도 들어간 아이돌스러운 춤이다. 중간에 손가락 하트도 발사한다. 오, 와아 하면서 손님들이 손뼉을 친다.


첫째 소리를 나는 유쾌한 소리 씨로 부르기로 한다. 역시 유쾌한 소리 씨라고.


텔레비전을 볼 때도 유쾌한 모모 씨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불면증을 화제로 대화가 이뤄졌다. 40대인 중년배우가 자신은 불면증이 있었는데 현재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다. 극복 방법은 음식을 먹는 것. 특유의 높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먹으니까 잠을 자요. 호호호 웃는데 참 유쾌한 사람이네, 했다.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고 이성이라면 퐁당 빠질 거 같은 순간이었다. 흰 살결에, 화사한 외모로 젊은 시절보다 살이 오른 듯한 외모가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우는 어른>에 수록된 에세이에서 에쿠니 가오리는 하이디의 선한 마음을 예찬한다. 하이디처럼 선한 마음이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선한 마음은 악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것은 겉으로 알 수 없는 속사정도 없다고 생각하다가 선한 마음을 원하는지 불분명해진다. 속사정이 없으면 소설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 충만하기 때문에.


유쾌한 모모씨가 되고 싶은데 유쾌한 모모씨가 되지 못해서(그런 속사정으로) 나는 글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북남북녀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프로필
구독자 533
작가의 이전글낮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