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여섯 살의 나이로 상점 영수증 뒷면에 적힌 주소를 가슴에 붙인 채 새로운 가족(고모)을 찾는 기차 여행으로 삶의 여정이 시작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자신의 출신지도 모르고 부모에 대한 기억도 없다.
게으름으로 시간을 보내던 십 대 초반에 강도 당해 죽어가는 부랑자와 맞닥뜨린다. 부랑자 윌리엄 코스웰 헤일리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소년인 로버트 그레이니어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형네 집에 살며 열두 살 조카를 임신시켜 조카가 그의 형인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해 사망하면서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것을.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부랑자와 헤어진 후 그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부랑자를 살리려는 시도라면 시도를 하지 않는다.
부랑자와의 만남 이후 게으름을 벗어나 노동에 성실하게 임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1917년 여름, 도둑질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중국인을 죽이려는 무리에 우연히 가담하게 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중국인은 도망쳤으나 자신이 '바람에 실려 간 홀씨처럼 광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 휩쓸린 것이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당황스럽다.
아내와 딸이 있는 오두막으로 걸으면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사방에 그 중국인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인이 강한 저주를 내렸을 것이기에, 저주를 내리기 전에 중국인을 죽여야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 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갓난 딸이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느낀다.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벌목꾼으로 일하고 있을 무렵 “나무가 우리를 친구로 대해주는 건 우리가 건드리지 않을 때뿐이야. 톱날이 파고들어 간 다음부터는 전쟁이 벌어지는 거라고.”“내가 도끼만 쥐게 해 달라니까.”“내가 도끼질만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까지도 다 정리하지 못할 만큼 나무를 자를 거야......”라고 말했던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늙은 동료 안 피플수는 높은 낙엽송에서 떨어지는 죽은 가지에 머리를 맞은 후 사망한다. 이후로 벌목꾼 무리에서 열병이 돌아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내와 딸이 있는 모이 계곡의 오두막으로 돈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 근방에 불길이 크게 일어 아내와 딸의 소식은 들을 수 없다. 피난민들이 살아서 나온 것을 기뻐하며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에 무심하게 구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슬픔과 혼란으로 사촌 집에 머무르며 아내와 딸을 잃었음을 받아들이지만 매일 밤 악몽을 꾸며 깨어난다.
마흔이 넘으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던 벌목 현장에서 날아온 가지에 왼쪽 턱을 맞으며 음식을 씹을 때마다 통증을 느끼는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아내와 딸과 함께 살던 모이 계곡의 집터에 다시 오두막을 짓는다. 혼잣말을 하며 홀로 모닥불을 바라본다.
자연은 순환하고 사람은 죽어가고 세상은 변해간다. 그 속에서 파생되는 폭력과 파괴와 외로움과 슬픔을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홀로 감내한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새로운 여자를 거부하듯이 새로운 세상과 거리를 두며 숲 속 오두막에서 은자처럼 지낸다. 미칠 듯한 성증을 지나가게 하며 살아 있으면서 죽은 듯한 삶을 산다.
이것이 속죄였는지 구원이었는지 박탈감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갓난 딸의 눈빛을 평생 잊지 못했다.
나무가 우리를 친구로 대해주는 건 우리가 건드리지 않을 때뿐이야. 톱날이 파고들어 간 다음부터는 전쟁이 벌어지는 거라고.
그 광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 그리고 자신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홀씨처럼 거기에 휩쓸린 일을 다시 생각하니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아내 글래디스)이었으며, 재산은 땅 1 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 였다.
데니스 존슨 <기차의 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