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쓰려. 식구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식탁 조명 아래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녀의 손이 가슴 부위를 향한다. 빈속에 쌉싸름한 맛을 거부하는 신호를 이제 몸이 보내온다. 가부좌 자세로 의자 위에 앉아 독서대에 눈높이를 맞춘 후, 쿠션을 팔에 끼고 새벽 독서를 즐겨왔는데. 집 안에서 걸어 다닐 때마다 대퇴부위로 둔중한 통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늘 그녀는 항상 하는 가부좌 자세가 아니라 두 발을 가지런히 바닥에 닿게 한 후 책 읽기를 시도한다. 허리는 왜 이렇게 불편하지, 누워만 있을 수도 없고. 휴, 그녀는 한숨이 나온다.
새 옷을 입으려니 낯설고 어색하고. 유행에서는 한참 뒤진 낡고 헤진 예전 옷을 다시 꺼낸다. 검은 무리에 섞인 흰무리의 머리카락과 조화되어 추레해 보여도 이제 그녀는 필요 없는 불편함을 견뎌내고 싶지 않다.
풋풋하고 생기 가득하다고 말해지는 시절에 그녀는 모노톤의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쿠션감 없는 단화를 주로 신었다. 차마 버리지 못한 단화를 착용하고 외출한 어느 날 걸어야 하는 모든 길이 고행이라는 것을 경험한 후 활동할 때마다 불편감이 이는 청바지는 옷장에 고이 모셔 둔다. 쳐다보지도 않던 화사한 꽃무늬의 옷들에 시선이 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신의 나이가 푸릇푸릇 한 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단편소설을 읽던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볼펜을 움켜쥔 후 어쩌면 냉정해졌는지 모른다. 약을 하거나 술을 진탕 마셔야 할 정도로 착하지는 말자. 그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하더라도 일어나는 모든 불행이 자신의 탓은 아니다,라고 노트에 적는다.
신적인 상태에 있는 어느 중독자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자신을 태워준 마음씨 좋은 가족의 사고까지도.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모든 빗방울을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푸릇푸릇하고 생기 가득한 존재들은 넘칠 듯한 에너지로 많은 것을 떠안으려 하기도 하지만(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당신, 어이없는 당신들, 당신은 내가 도와주길 바라지."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수록된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를 읽고 적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극한 연민이 아니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는 내게 말할 수 없고, 나는 무엇이 현실인지 그에게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