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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게를 처음 먹은 날

다섯 살 나도의 생활

by 북남북녀

게딱지에 비벼진 볶음밥을 입안에 가득 넣고, 게 다리에서 살을 빼먹는 아이들이 맛있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소리와 나도가 이 장면을 본 이후에 “엄마, 대게 먹고 싶어”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반복되는 요청에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는 주말이 오자 배달앱에 들어갔다. 대게 파는 가게는 없고 홍게 세 마리에 새우 라면을 세트로 파는 가게가 있다. 대게나 홍게나 비슷하겠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엄마는 결재했다.


삼십 분 뒤 배달된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비릿한 해산물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찬다. 박스 중앙에 놓인 게딱지에는 야채와 김, 생선 알이 섞인 볶음밥이 담겨 있고, 볶음밥을 둘러싸고 먹기 좋게 손질된 게 다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게 뭐야, 묻는 소리에게 이렇게 밀어 올리면 살이 쭉 나와, 먹어봐 했더니 굳은 표정으로 받아먹던 소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맛있어.

다행이다, 안심한 엄마는 아이들의 식판에 게딱지 볶음밥을 하나씩 옮겨놓고 본격적으로 먹을 준비에 들어갔다.


“나도야, 대게 먹고 싶다고 했잖아. 볶음밥 먹어볼래?” 홍게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 있던 나도는 도리도리 고개만 흔든다. “나도야, 이게 게 다리야. 이렇게 쑥 밀어서 먹는 거야. 먹어볼래?”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눈이 있어”나도가 말한다. “게는 눈이 있지. 꽃게, 꽃게, 꽃게는 옆으로 걷잖아.”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홍게만 보고 있는 나도를 위해 새우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이게 새우야. 이렇게 껍질을 까서 흰 살을 먹는 거야”

아빠가 설명하자 소리와 나도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눈빛이 흔들린다. 새우 살을 식판에 놓으려고 하자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만 도리도리 한다.


소리가 게 다리를 몇 개 먹기는 했으나(엄마는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아빠는 홍게와 볶음밥과 새우를 혼자서 우적우적 먹는다. 좋아하는 라면이 앞에 있는데도 홍게와 홍게 먹는 아빠만 바라보며 표정이 굳은 나도에게 “라면 먹어야지” 말하자 “나는 징그럽지 않아”나도가 대답한다.


홍게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먹기 시작한 나도의 그릇에 남은 라면이 보인다. 라면을 남기다니 처음 있는 일인데.


그날 밤 자려고 불을 끄는데 “나는 징그럽지 않아”나도가 혼잣말하듯 다시 말한다. 눈이 있는 게딱지에 쫓기는 꿈 꾸는 거 아니야. 충격이 대단한 거 같은데. 엄마는 살짝 나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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