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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 평온하게

by 북남북녀

슬프다고 하면서 밥을 잘 먹는 건 진짜 슬프지 않은 걸까, 아니면 생명의 보호본능일까.

아파서 입맛을 잃을 경우 나는 더 아귀아귀 먹는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잔뜩 말아 훌훌 넘긴다. 이것은 확실히 보호본능 같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살고자 하는 의지. 이 의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저 밑바닥 어디선가 돌출한다. 의도와는 상관없는 어느 곳에선가.


햇볕 아래서 아이와 거닐고, 하얗게 돋아나는 꽃잎을 바라봤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어떻게 돼?” 반복되는 물음에 “엉엉 울어야지, 네가 없으면 엄마는 큰일 나. 네가 있어서 엄마는 많이 많이 행복해.”

아이가 내 품을 파고든다. 보드라운 볼에 입을 맞춘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계속.


정리를 제 때에 하고 청소기도 부지런히 돌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양호한 상태랄까.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며 잔잔한 파문이 일었으나 곧 잠잠해졌다. 고요한 물결처럼 한 주가 흘러갔다.


충실하게 살아가니 책을 못 읽네. 정리된 집안에서 멍하니 하늘을 본다. 잠깐, 무슨 생각을 했었는데. 방금 무언가 떠올랐는데. 이 그릇을 먼저 제 자리에 놓자. 발바닥에 들러붙는 먼지를 제거한 후에. 잦은 움직임 아래 수면은 일렁인다.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까. 잠재의식에 쌓여 어떻게든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잠재의식의 영향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투사라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 사랑 역시 내 모습의 반영일 .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이끌어간다. ‘나’이면서 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무리들의 소란스러움. 찰랑찰랑 물결치는 파동. 시끄럽다, 평온하게.

돌아오는 주에는 책이 좀 읽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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