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오기까지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

by 북남북녀

<앞서 나간 자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여자가 자기 뜻을 굽히고 상대방에게 동의하는 경청자이길 요구하는 시대에, 여자가 남자의 지혜를 담는 저장소가 되기 만을 요구하는 시대에, 대학이나 연구소에 여자가 들어서기 힘들었던 시대의 이야기가 주로 담겨있다.


독특함 점은 프롤로그에 “아름다움 같은 어떤 진실은 상상과 의미 부여라는 빛을 슬쩍 비출 때 가장 명확하게 보인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저자는 상상한다. 그 인물의 시대와 상황으로 들어선다.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풀러 이야기로 들어가며 저자는 “나는 이렇게 상상한다”로 시작한다. “격앙된 심정에 가라앉은 마음, 그리고 언짢은 기분의 호리호리한 중년 수학자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독일의 1월 추위 속에서 마차에 몸을 싣고 있다.”


여성 최초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며 천문학자인 마거릿 미첼의 생가를 방문한 저자는 쓴다. “두 세기 후 박물관이 된 미첼의 생가를 방문한 나는 그 망원경의 차가운 놋쇠 몸통 옆구리에 움푹 팬 네 개의 상처를 몰래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 자국이 어쩌다 생겼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저자는 상상한다. 마리아가 무거운 퀘이커 복장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무거운 황동 도구를 짊어지고 지붕의 노대에 오르려는 모습을.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외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시대의 인물들과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 있다. 저자는 상상과 사실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그들을 바로 옆에서 숨 쉬는 사람들로 그려낸다.


재미있는 부분은 같은 개념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이다. 미국의 작가이며 평론가였던 마거릿 풀러는 석 달 만에 독일어를 독학한 후 괴테를 탐독한다. 괴테의 “전체” 개념에 영향을 받아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자아의 개념은 가짜이며 상황이 빚은 결과일 뿐이라고. 자신이 괴로웠던 이유는 자아를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오직 전체의 관념 안에서 살아가야 하며 그 전체가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다고.


괴테의 “전체 안에서 살아가라"라는 개념을 <모비딕>을 쓴 마거릿 미첼과 동시대의 허먼 멜빌은 헛소리라고 쓴다. 개인의 정체성이 하찮은 것이라 해도 몹시 고통받는 사람에게 전체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네, 그럼 행복해질 거야. 하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고 괴테는 위대한 시인이지만, 그가 한 말 중에는 헛소리도 만만치 않게 많다고.


또한 멜빌은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에 대한 비평문에서 “무한한 대상에 유한을 강제하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모든 대상은 무한하다."라고 쓴다.


이 비평에 대해 저자는 멜빌의 감상은 아르키메데스까지 거슬러 오르는 심오한 의견이라고 평하며 아르키메데스는 우주가 무한한 존재가 아닌 유한한 존재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쓴다. 우주의 유한성 개념은 지금까지도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하며 21세기의 천체물리학자 재너 레빈은 무한은 재미있는 개념이지만 실제로 자연에서 무한히 관찰된 적이 없다고 일깨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직물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실과 똑같은 직조술로 짠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유한한 존재인데 이 우주, 시공간만은 무한할 것이라 생각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무한의 개념과 자신의 유한성이라는 간극에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은 “우리는 모두 힘을 기울여 손을 앞으로 뻗지만 그저 무한을 숨기고 있는 장막의 극히 일부만을 움켜쥘 수 있을 뿐이다.”라고 일기에 쓰고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첼보다 한 살 많고 초월주의적 위대함에 취한 소로는 “내 인생은 무한성을 띠고 있다.”라고 일기에 적는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을 읽은 저자는 다시 적는다. 우리의 깊이, 우리의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침착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마크 트웨인의 출생과 죽음까지도 혜성의 출현과 함께 언급되어 있으며 요하네스 케풀러가 천문학을 관장하는 뮤즈로 언급한 ‘우라니아’가 한 세기 반 이후 윌리엄 허셜이 태양에서 일곱 번째 자리에 있는 행성을 발견하며 우라누스(천왕성)라는 이름을 붙이고, 독일의 베토벤은 이 새로운 행성 소식에 “우라니아의 별에서는 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할까” 악보의 여백에 적는다. 다시 두 세기가 지난 후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보낸다. 이 레코드에는 로리 스피걸이 케풀러의 <세계의 조화>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 수록되어 있다. 케플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잘못된 지식을 일깨우기 위해 평생 애썼다. 그는 마녀재판이 성행할 정도로 미신과 무지에 차 있는 그 시대를 일깨우려 노력하다 숨을 멈춘다.


책의 순서는 요하네스 케풀러,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윌리어미나 플레밍,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슨, 레이첼 카슨, 마거릿 풀러로 나와있으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을 때마다 이리저리 연결되는 사람들이 많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과 인물들이 책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 환경을 위해 작업한 작가이자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과 연결해서 바다에서 난파당한 마거릿 풀러로 저자는 책을 끝맺는다.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은 바다로 쓸려갔고(죽었고) 카슨이 태어나기 57년 전의 미국의 작가인 마거릿 풀러는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어 가족들과 도착까지 두 달 걸리는 화물선에 승선한 풀러는 돌아가지 못한다. 배는 난파된다.


저자는 풀러의 묘비를 찾는다. 묘비에 새겨진 글씨 위를 손가락으로 쓸며 여섯 번째 구절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를 생각한다. 재능으로 세계에 속한다는 실존적인 상태가 인생을 실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명성이나 성공보다 가치 있으며, 개인적인 애정이나 그 애정에서 비롯되는 탐욕스러운 애착보다 훨씬 관대하고, 행복이나 행복에서 비롯되는 혼란스러운 목표보다 훨씬 적확하다고.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된 캐럴라인 허셜의 이야기로 리뷰를 마치려 한다. 왕립천문학회에서 금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며 천문학자인 그녀는 1783년 하늘을 관측하려고 망원경으로 가다가 발이 미끄러져 망원경을 회전시키기 위해 고안한 장치로 넘어진다. 갈고리에 다리를 찔린다. 허셜은 의사에게 보여줄 때까지 며칠을 상처에 붕대만 감고 버텼고 상처를 본 의사는 “군인이 이런 부상을 입는다면 병원에서 여섯 주 동안 간호를 받으며 입원할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심하게 다친 상처에 허셜은 사무적인 어투로 일기에 적는다.


“주위가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곳에서 이토록 거대한 기계를 이용하여 관측하는 일에 위험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머릿속을 온통 채운 생각 중 내 몸의 안전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마지막이 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캐럴라인 허셜은 열한 살에 티푸스를 앓아 목숨을 잃을 뻔한 탓에 왼쪽 눈이 상했다.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해 키는 130미터 남짓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을 하기에는 딸의 외모가 추하다고 생각해서 하녀로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작은 몸집과 시력장애에도 불구하고 6미터에 달하는 망원경의 기단부에 앉아 하나 남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2510개의 성운의 위치와 여덟 개의 혜성을 발견했다. 왕립천문학회에서 금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된다.


배서 대학 최초의 천문학교수로 임명된 마리아 미첼(여성 최초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누구인가 질문에 “허셜이지”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캐럴라인 허셜일 거라고 저자는 추측한다.(캐럴라인 허셜의 오빠 윌리엄 허셜도 천문학자다.)


배서 대학에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미첼은 이야기한다. 모든 여자가 천문학자, 수학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어떤 여성이든 자신이 선택한 일에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뉴턴은 자신의 능력이란 결국 전부 “끈기 있는 사고”라고 말했다. 근면한 사고, 근면한 수고, 확고부동한 목적의식이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 과거의 누구보다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여성은 그것으로써 모든 여성을 돕는 거다.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그 여성은 인류를 움직이는 것이며 그것은 성장이다,라고.


근면 성실하며 자기의 안위를 맨 나중으로 두고 자기 일에 완벽을 가했던 여성들이 책 속에 있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 나갔으며 재능으로 세계에 일조했다. 나는 기억해야 한다.

앞서 나간 자들로 지금의 시대가 있다는 것을. 지금의 자유와 교육의 개방과 평등은 앞서 나간 자들의 삶과 연결되어 내 앞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불평과 불만과 공허와 외로움과 우울을 앞세우기 전에 나는 먼저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그들이 살아갔고 죽어갔는지를.


"나도 죽으리라. 당신도 죽으리라. 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낸 바다로 다시 돌아가게 되리라. 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뿐이리라."



keyword
북남북녀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프로필
팔로워 531
작가의 이전글J와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