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뒷모습은 슬프지 않다. 내게는 놀랍다.
길거리에서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버지 바라보기를 피했던 듯싶다.)
갑자기 아버지(같은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을 때는 ‘철렁’했다.
구부정한 어깨에 느릿한 팔자걸음. 언제 아버지가 골목길로 들어서 보이지 않게 될까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아버지를 불러야겠다는, 함께 집으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뿐 만은 아니다. 갑자기 혹은 우연히 보게 되는 가족이나 타인의 뒷모습에서는 앞모습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감 혹은 피로감이 배어 나온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식 장소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온 동료 두 명이 오락실 게임기에 앉아 있었다. 동그란 간이의자에 비좁게 앉아서 오락에 열중해 있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소란스러운 오락실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 무방비함. 다 자란 성인의 앞모습에서는 보이지 않던 천진난만함에 곧 상처 입을 것 같은 연약함.
내게 이런 감정을 일으키려고 뒷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 텐데. 다른 사람의 뒷모습에서 떠올려지는 것들에 미안한 마음이다. 망상도 가지가지야, 피식 웃어버리기도 한다.
아이의 뒷모습은 안전하다. 흥미로운 것이 나타나면 곧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사람의 어깨는 경쾌하다. 날아갈 듯한 상쾌한 걸음걸이를 뒤에서 바라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나도가 플라스틱 장난감 총을 양손에 들고 목 뒤에다가는 다른 장난감 총을 옷에 꽂고 카우보이처럼 다다다 총 쏘는 흉내를 내고 있다. 다리는 쩍 벌리고 하얀색 장난감 바구니를 머리에 쓰고서.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면서 “엄청 귀여운데”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가 뒤를 돌아본다.
“귀여운 게 아니고 멋지지!”
“맞아, 멋지지. 진짜 멋있다.”
씩 웃던 나도가 “나는 기사야”말한다.
“기사는 뭐 하는데?”
“기사는 괴물을 무찌르지. 왕자가 아니라 기사야”총을 번쩍 든다.(머리에 쓰고 있는 장난감 바구니는 어쩔) 푸하하하하. 내 웃음소리에 나도의 어깨는 더 으쓱해진다. 멋진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로 뛰어간다. 거울을 보는 아이의 뒷모습은 전혀 슬프지 않다. 내게는 좀 놀랍다.
아이는 진짜로 기사 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괴물을 무찌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