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벚꽃잎
에쿠니 가오리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보관 중인 아이들 여름옷을 꺼내 세탁했더니 건조대가 부족하다. 베란다에 놓인 장난감 싱크대 위에 반바지를 몇 개 널고 플라스틱 미끄럼틀 위에도 걸쳐 널었다. 여섯 시에 동네 공원을 두 바퀴 뛰었더니(걷는 것에 가깝게) 발가락이 아프다.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가 지금도 시큰거린다. 조금 뛰었다고 발가락이 아프다니. 운동화 쿠션이 부족한가. 걷는 데는 지장 없었는데.
벚나무가 아홉 개, 목련 나무가 세 개인 작은 공원. 목련은 낱장, 낱장 떨어져 내려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다. 예전 국어 선생님은 목련꽃 떨어져 내리는 모양이 미친년 널뛰듯 한다며 싫다고 했었는데.
크기의 차이일까. 목련 꽃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양이 요상해 보일 수 있는 것은. 나비인 듯 팔랑이며 떨어지는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듯한데. 하얗게 뒤덮인 길은 탄성이 나오게 예쁘기도 하고.
소시지를 구워 점심 준비를 해 놓은 후 나도에게 나가자고 하니 싫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 햇살 아래서 벚꽃잎이 날리고 있는데.
장난감으로 놀고 있는 나도를 두고 세제 냄새가 배어 나오고 습기가 가득해 식물원을 연상하게 하는 베란다에 앉았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들고서. 꿋꿋하다, 에쿠니 가오리씨는. 정형화되지 않은 사람들을 그리는 근성이랄까, 뭐 그런 것.
러시아인 할머니를 둔 일본 가족은 돈은 부족하지 않아서 고풍스러운 대저택에서 자기들만의 문화 안에서 살아간다. ‘가엾은 알렉세이에프’, ‘비참한 니진스키’ 같은 말(가족들만 의미를 알 수 있는 )을 사용하면서. 이질적인 외모에서 드러나듯 사회에 섞이기 힘든 이물질 같은 존재로. 사회에 나가면 불량품처럼 느낄 수도 있는.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전통이나 관습’,‘세상에 대한 체면’에서 거리가 있는 가족 구성원의 끈끈한 유대감과 고독.
공동의 정서를 가지고 서로 깊게 결속되어 있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혼자다. 에쿠니 가오리씨가 말하는 것은 그것일까. 결국 혼자.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끈끈해도 혼자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 자신만 ‘응달에 있고 주변은 온통 양달인’그런 외로움 혹은 분리.
벚꽃잎이 새무리처럼 날아오르는 모양을 창으로 바라보는 나도가 저게 뭐야.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소리친다. 이렇게 예쁜 엉망진창이라니.
학교 마치고 온 소리의 모자티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벚꽃잎, 옅은 분홍색 낱장들.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나도가 소리치고 벚꽃잎 날리며 공원에서 놀다 왔을 소리는 깔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꿋꿋하다, 에쿠니 가오리씨는. 하얀 벚꽃잎이 다 떨어져 내리면 공원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덮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