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량만큼 조그만 구멍이 뚫려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를 읽고

by 북남북녀


대체로 새벽시간대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낮 시간은 아이들과 있다 보니 책에 몰두하거나 노트북을 꺼내기가 어렵다. 이번 주는 두 시 반이면 눈이 떠져 일어났다. 이 시간에는 집으로 들인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냉장고에서 나는 윙 하는 소리 외에는 조용하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라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탁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작은 냄비에 물을 끓이는 일이다. 좋아하는 머그컵에 믹스커피를 담고 끓어오른 물을 부어 식탁에 앉는다.


식탁 위에는 커다란 독서대가 있고 그 위에는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책이 올려져 있다. 그 옆으로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를 통해 우리 집에 오게 된 하얀색 스탠드가 자리하고 있다. 신혼 때 실용성만 보고 구비한 것인데 요즘 예쁜 디자인의 스탠드를 볼 때마다 이 네모지고 투박하기만 한 스탠드를 바꿔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은 아이들보다도 먼저 집에 자리한, 반짝이던 하얀색이 누리끼리한 하얀색으로 변해가는 스탠드와 정이 들어 고장 나지 않는다면 계속 함께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익숙한 스탠드를 한 번씩 만져 보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이 풍경이 좋다. 다른 곳은 어둠으로 희끄무레하고 책으로 비치는 스탠드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적막함, 고요함.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책을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나오는 구절이 있어 혼자 빙그레 웃는다. 보호받는 걸 좋아해서 ‘지켜주고 싶은 타입’을 동경한다는 구절. 요즘은 걸크러시가 대세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흔히 듣는데 청순가련형을 동경한다는 작가의 용감한 구절에.


내용은 본인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가련형을 선호하나 그림책을 읽으면 마음이 튼튼해져서 곤란하다는 그림책을 찬양하는 글이다. 그런데 아침, 저녁으로 야채와 과일만 먹고 신장이나 체중이 표준에 못 미치고 가련함이라는 단어가 글에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보니 작가가 정말로 보호본능 일으키는 ‘지켜주고 싶은 타입’을 동경 하나보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가를 느끼면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책 읽기가 더 즐거워진다.


또 읽다가 웃음이 나온 구절은, 이번에는 흐뭇한 미소에 가까운데 열렬히 좋아하는 것으로 책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에 있든, 뭘 하든 혼의 절반이 그쪽 세계에 가 있고, 그래서 책을 다시 펼칠 때면 그쪽으로 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쪽에 돌아간 느낌이라는 구절에서. 또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에서. 나 역시 이런 느낌의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에는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운 마음이 퐁퐁 솟아난다.


고요한 새벽 얇은 책을 읽으며 혼자서 킥킥 웃는 상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이 눈을 뜨면 엄마가 신난 모습에 어리둥절할지 모르나 수다 떠는 느낌으로 읽히는 책이라 신이 나는 것을 어찌할까. 도서관에서 책을 잘 들고 왔다는 뿌듯함에 자존감도 상승하는 중이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 이름을 보고 들고 나온 책인데 역시 산문도 재미있다.


소설을 읽으면 스토리에 빠지거나 인물에 빠져 소설가의 글 쓰는 방식에는 눈이 잘 가지 않는데 지금 읽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만약에 글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쓰는 풍이랄까 문장의 온도랄까. 그런 것이 마음에 든다. 사람의 마음 내밀한 곳에 닿더라도 놀래 키지 않는 온도랄까. 가볍고 부담 없는.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쓰기와 읽기와 주변 일상, 짧은 소설들로 이뤄졌다. 그동안 쓰기나 읽기에 대해 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모으고 거기에 소소한 일상 글을 더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십 대 초반에 잡지에 글을 게재하며 전문작가의 길을 걸었다. 십 대 시절 그릇장 속에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그릇처럼 고독했다는 작가는 자신과 자신 이외의 것이 이어질 때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동안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스스로 느끼라고.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그 질량만큼 조그만 구멍이 뚫려 닫혀있던 안쪽과 바깥쪽이 이어진다고. 쓴다는 것은 자신을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을 통해 밖으로 흘리는 것이라고.


글을 쓸려면 스트립쇼를 할 배짱이 필요해.

쓴다는 건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열심히 써서 궤짝 한가득 모아놓고 시작해요, 라는 선배 작가의 조언도 인상 깊었다.


이런 소소한 듯 느껴지는 일본식 표현이 좋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재해나 재난이 많아서인지 일본 소설에서는 ‘나는 언제든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메시지가 종종 흘러나온다. 어떤 재난에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보다는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세계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같은. 그러니 오늘 하루를 소중하고 명랑하게 보내자는.


책에서도 작가는 목욕에 산책에 빵에 죽에 과일에 열심이다. 그리고 읽고 쓴다.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이 소설가라는 저자는 평생 모아둔 작은 지우개들의 탈출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평생 모아둔 어떤 것들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쓴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것들의 의지가 들어간다.

작가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줄 뿐이다.


십 년이 되어가는 냉장고의 앓는 소리와 십 년이 훌쩍 넘어가는 스탠드의 불빛 아래서 누구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줘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져본다.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었고, 열중할 수 있는 것도 호기심도 없었습니다.
친구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요. 그럼, 매일 뭘 했느냐고요. 그저 봤습니다.
타인을, 세계를, 자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그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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