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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편지

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by 북남북녀
나의 소중한 당신도 저런 마차를 타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같은 하급관리가 아니라 고위급 장성들이 당신의 상냥한 시선을 붙잡으러 애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잡스런 면직물로 된 옷이 아니라 비단에 금으로 치장된 옷을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까르 제부쉬낀이 사랑하는 바라바라 알렉세예브나는 바싹 마르고 병든 모습에 사악한 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기도 하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이어 편지를 쓴다.


사악한 자들이 당신을 망쳐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방탕한 건달놈까지 당신을 모욕한단 말입니까...... 예끼, 여보쇼, 썩 그만들 두시오! 대체 왜 이런 일이 다 일어나죠? 당신이 고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당신에게 의지가 되어줄 힘 있는 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열일곱 살에 일을 시작해 근무경력이 30년이다. 이런 그는 직장에서 비웃음이나 조롱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며 그는 사랑하는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에게 편지를 쓴다.


제가 온순해서 그런 겁니다, 제가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라서요! 제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저를 못살게 구는 겁니다.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고아인 바르바라 알렉 세예브나는 같은 처지다. 가진 재산이 없고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있으며 이들을 보호해줄 힘 있는 친구나 친지도 없다.


온순하고 착한 사람들. 수를 쓰지 못하는 요령 없는 사람들은 가난까지 더해지니 무시하는 시선과 헐뜯는 말과 나쁜 사람들이 손을 뻗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변변한 신발 한 켤레 없어서 당장 내일 출근 걱정을 해야 하는 마까르 제부쉬낀은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라고 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 때 온갖 경쟁과 다툼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면서, 살아남기 위한 실전적인 요령 같은 것을 터득했다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쓴다. 이런 힘든 체험이 없었다면 소설 같은 걸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소설을 쓰면서도 누군가로부터 좋아하는 대상이기보다는 미움을 받거나 증오를 받거나 경멸당하는 쪽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된다고.


예수는 제자를 세상으로 내보내며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다. 출가자의 생활 태도에 부처는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두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거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만 해서는, 순진무구한 마음만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든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약점을 발견하면 물어뜯듯이 달려들 수도 있는 세상. 보호가 없는 세상.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내게 삶은 기도와 같다. 경건한 마음으로 소망을 품고 생활하는 것.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듯이.


소망을 품는 자체가(바른 소망이라면) 스스로를 보호하는 느낌이며(‘악’이라면 ‘악’에 물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체가 ‘악’과 거리를 두는 느낌이다. 신의 존재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세상에서 내뿜는 악취를 되도록(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몸속에 품지 않을 것. 내게서 나오는 악취에 지지 않을 것. 내게 삶은 기도와 같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무소의 뿔’ 장에 나오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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