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힌 자의 시선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젊은 가정교사는 예민한 감각으로 감지했을 수도 있다. 블라이 저택의 전 가정교사와 품행 나쁜 하인의 불미스러웠던 관계를. 부모의 죽음 후 고용된 자들의 돌봄을 받으며 방치된 듯 지내고 있는 아이들의 어두운 기운을.
어두움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자는 아이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 대단한 결심 속에는 자신에 대한 환희와 약간의 허영심과 아이들의 보호자(삼촌)에 대한 애정도 조금은 섞여있으리라.
아이들을 사악한 영으로부터 구원하기로 작정한 젊은 가정교사는 그 자신이 보는 것(공포)으로 주변을 전염시킨다. 공포는 아이들에게로, 집을 관리하는 그로스 부인에게로 전해진다.
사로잡힌 자의 시선은 천진난만할 수 있는 아이들의 행동도 미심쩍게 바라본다. 유령의 존재를 알면서도 아이들이 숨기고 있다고 믿는 젊은 가정교사에게 아이들의 행동은 간교하게 비친다. 자신의 의도대로 옆의 사람이(그로스 부인) 행동하기를 원하기에 조종하기도 한다.(요즘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이리라.)
유령이 블라이 저택에 실제로 존재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유령을 보는 젊은 가정교사가 있었고, 젊은 가정교사는 아이들의 구원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공포로 뒤덮인 자의 잘못된 판단과 상상력(사로잡힌 자는 젊은 가정교사였을까, 아이들이었을까)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자면 아이들은 품행 나쁜 하인의 소행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유령에 사로잡혔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젊은 가정교사가 영웅이기보다는 불행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엄마 같은 존재가 되기를 결심했다면 좋았을 텐데. 악몽을 꾼 아이가 놀라 일어났을 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안아주며 아이의 눈을 다시 평온하게 감겨주는 엄마가. 비록 엄마는 유령을 마주 보며 공포에 떨더라도.
아이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나치에 끌러가면서도 아들에게 보였던 웃음은 아들이 공포에 떨기보다는 살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상황을 게임으로 둔갑시키고 아들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아버지.
<나사의 회전>의 젊은 가정교사는 영웅이 되기를 원했고, <인생은 아름다워> 아버지는 아들이 살기를 원했다. 이 마음의 차이로 결말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자신이 영웅이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받거나 공포에 떠는 대상이 필요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