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사이 동그랗게 솟아오른 언덕 위에 장난감 몇 개가 숨겨 있었다. 플라스틱 분홍색 찻주전자, 흰 찻잔 두세 개, 스푼, 포크, 접시.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 것이 아닌, 옆집 아이가 언덕에 숨겨 놓은 그 장난감이 머리에 떠올랐다. 날이 저무는 저녁 시간, 나는 혼자서 장난감이 숨겨진 언덕에 올랐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장난감을 발로 차서 길가로 내려왔다. 내 것이 아니라는 듯이, 버리는 하찮은 물건이라는 듯이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가에서 장난감을 발로 차며 집까지 가져왔다. 지나가던 어른이 손으로 들어야지 왜 발로 차냐고 묻던 기억도 남아있는데. 집으로 가지고 온 이후로 장난감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 지어진 쇼핑몰과 연결된 지하도에는 테이블을 두고 동그랗게 의자가 놓여 있었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동네 아이들은 피서를 가듯이 지하에 모였다. 지하공기는 에어컨을 켜놓은 듯 서늘했다. 의자에 앉아서 기괴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큰 소리 내며 지하도를 뛰어다니던 철없는 아이들 중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우리는 테이블에 엎드려 우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왜 그러냐고 친절하게 말 거는 어른이 있으면 돈을 잃어버려 엄마에게 혼날까 집에 가지 못한다거나, 버스비를 잃어버려 돈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백 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어느 어른은 거짓인 것을 안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고, 어느 어른은 난감하다는 눈빛을 하고 빨리 집에 가라며 지갑을 열어 백 원을 주었다. 백 원을 주고 간 어른이 저만치 멀어져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속여 넘겼다는 쾌감에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봤어? 봤어? 봐 백 원이야.
어릴 때의 철없는 행동을 생각하자면 물론 이뿐 만은 아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행위도 자주 있었다. 커다란 주택들로 빙 둘러싸인 동네였고 부자는 나빠, 한 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커다란 주택으로 몰려가 초인종을 눌렀고 인터폰에서 누구세요, 대답이 들리면 와르르 도망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코를 찌르는 매운 내가 공기 중에서 빈번하게 맡아지는 시절이기도 했으나 내게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재미였다. 와, 소리 지르며 흩어질 때의 흥분감, 전율.
나쁜 짓을 하고 걸리지 않았다는 희열과 거짓말을 하고 어른을 속여 넘어가게 했다는 짜릿한 기억은 지금까지 떠오르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데. 이 기억으로 도둑질과 구걸과 악의를 지닌 장난을 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니, 이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얼굴 붉힐 만한 가치가 있을 지도. 옆집 아이의 소꿉 장난감과 지나가던 이의 백 원을 갚을 길은 없고 벨이 울리는 장난을 당한 집들에게 사죄할 방법이 없어 (기억이 떠오를 때면 ) 언제까지나 내 얼굴은 붉어지겠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