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소설의 재미
아니타 블랙몬 <리슐리외 호텔 살인>
되짚어보니 그렇다. 전 날 아이들과 근처 박물관에 다녀왔다. 집에서는 틀지 않는 에어컨 바람 속을 걸었다. 저녁으로 오징어 뭇국을 끓이고 어묵을 볶으며 찬기를 빼놓는다며 깍둑썰기 한 수박을 한 대접 담아 미리 식탁 위에 놓았다. 수박 한 알을 입에 넣었는데, 이것은 얼음. 냉장고 온도가 낮게 책정되었는지 살얼음이 된 수박이다. 저녁 준비를 하며 한 대접의 수박을 빠른 속도로 입에 가져갔다. 식탁에 남편과 아이들이 앉았을 때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다시 한 대접 담았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다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시간에 산책에 나섰다. 이상하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몸이 천근만근, 통증이 느껴진다. 힘이 없고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한 시간 반 코스에서, 반 코스만 걷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이고 곧 비가 내릴 듯한 습한 바람이 불어댄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 앞에 당도했다.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좋았을 것을 습관적으로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한 층 올랐을 때 남은 사 층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축축 처지는 몸으로 더위를 먹었나 생각했다.
몸에 닿는 차가운 물의 감촉에 놀라며 찬물로 샤워했다. 오늘따라 물이 차네, 생각하며 머리까지 헹궜다.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를 깨우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리슐리외 호텔 살인>을 펼쳤다. 이런 책의 단점이라면 마지막 장을 보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
조금 더 시간이 있으면 다 읽을 듯한데 아이를 깨워 수업에 보내야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냉장고를 열어 낫또를 꺼낸다. 아이가 잘 먹는 음식으로 냉장고에 떨어지지 않게 쟁여두는 것. 밥 위에 채 썬 야채라도 올려 주고 싶은데 안 먹으려고 할 것이기에 간장만 넣고 휘저은 낫또를 밥 위에 올린다.
낫또 비빔밥, 오이와 파프리카 스틱, 우유를 담은 컵이 놓인 식탁에 아이를 깨워 앉힌다.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서는데 양쪽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지며 주저앉고 싶다.(울고 싶다.) 이때서야 나는 서랍을 열어 체온계를 꺼낸다. 삐삐 오른쪽 38.8도. 왼쪽 38.5도. 아, 몸이 무겁더라니.
약장에서 진통제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킨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를 수업에 보낸 후 <리슐리외 호텔 살인>을 마저 읽는다. 오베라는 캐릭터가 생각나는 꼬장꼬장한 독신녀 할머니 애들레이드 애덤스. 말랑한 속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까칠함, 재치와 유머. <리슐리외 호텔 살인>은 한동안 안 읽던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일깨웠다. 남편이 휴가인데 어디 나가기는 힘들듯하고 미스터리 소설이나 잔뜩 읽어야지. 땀나는 여름, 열도 난다. 푹푹
(다음 날 체중계에 올라가니 1kg 빠졌다. 세끼 다 먹고 하루 종일 잤는데.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