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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으로 읽은 책

타냐 바이런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by 북남북녀


이렇게 말하면 편견이겠지만 전문가라고 말해지는 직업군의 사람은 멀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머리에 꽉 차 있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지식으로만 판단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기에 네,라고 말하는 게 속 편할 거 같은 사람.


이 책은 그런 전문가 집단군에 속한 영국 임상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라는 자극적인 제목도 붙어 있다. 임상심리사가 되기 전 3년의 실습 기간 동안의 경험을 이야기하기에 임상 심리사의 좌충우돌 성장 소설 같은 느낌도 가지고 있다.


상담실 1. 밤마다 발작하는 남자: “네 눈엔 내가 쓰레기로 보이지?”
상담실 2.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도대체 왜 죽고 싶은 거니? 넌 이제 겨우 열두 살이잖아”
상담실 3. 생모를 거부하는 여자:“이 모든 것은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
상담실 4.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파: “빨리 도망가야 돼, 우릴 죽일 거야!”
상담실 5.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굶어 죽고 싶은 소녀: “전 아주 작아지고 싶어요. 조그맣게요”
상담실 6.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 “난 그쪽 인생을 원해요”


여섯 가지 이야기 중에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부분을 읽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힘없고 약한 이들이 수렁에서 헤어 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세상의 구조가 어떠하든지 최악의 선택만은 면하게 하는 것이 제도가 되어야 한다, 고 노트에 적었다.


외로움의 기전을 알게 됐고, 외로우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전문가가 개입하더라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전문가라도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외로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둘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나의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인정하는 임상심리사면 최소한 지식으로만 사람을 대하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티치너에 따르면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내부를 느끼’려는 감정적 충동은(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겁쟁이의 꿈처럼) 우리의 정신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외적 표본에서 찾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즉 감정 이입으로 말미암아 자아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일부러 다른 사람의 내부를 느끼려는 충동은 없으나 함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내부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것이 본능적인 전략이든지 계획적인 전략이든지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소중히 한다.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반사회적인 사람 제외하고(밤마다 발작하는 남자를 보면 반사회적인 사람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서로는 기대어 산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부모와 자식이. 홀로코스트 같은 커다란 시련을 극복하고 살 수 있는 이유도 옆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내부를 소통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자아에 대한 치유구나, 생각했다.


밥 먹었어 묻거나 대답하는 일상적인 대화들이 하나의 치유제이기도 하다고, 외로우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람은 곁에서 함께 생존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겠다고.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고 해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라는 구절도 있는데 극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다, 라는 말도 하고 싶다. 죽을 듯이 뜨거운 사랑이 아니어도 서로 눈을 맞추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살려내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베르토 망겔 <끝내주는 괴물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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