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홱 돌린다는 건
“나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부끄럽습니다.”
“계속 말을 시키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습니다.”
“조용히 지나가 주세요, 저는 말하는 것에 서툽니다.”
정도로 엄마인 나는 아이의 말을 알아듣는다.
“안녕?” 하고 인사하는데 다섯 살 아이가 고개를 돌리면(그것도 한껏 새침한 표정으로)
어른들은 조용히 지나기보다는 더 흥미롭게 아이를 쳐다본다.
공원에서 나도와 시간을 보낼 때 자주 마주치는 회색 등산복 차림의 중년 아주머니가 있다. 등산 후 아주머니가 공원 벤치에서 쉴 때와 우리의 놀이 시간이 겹치는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서 우리가 비눗방울을 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개미를 구경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나도에게 인사라도 건네려면 나도는 내 뒤에 숨거나 다른 곳으로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끈다.
한동안 뵙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다시 아주머니를 만났다. 한낮의 해를 피해 공원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니 언제나와 같은 회색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가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나는 인사를 했고 아, 하고 우리를 알아본 아주머니도 표정이 환해졌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나도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잘 지냈어, 아주머니가 나도에게 말을 걸자 몇 개월 전만 해도 다른 곳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거나 내 뒤에 숨었던 나도가 고개를 홱 돌린다. 자극에 민감한 아이의 낯설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가 더 당황하지 않게 다그치는 어조가 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타이른다. 나도의 새로운 행동이 귀여운지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아주머니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주머니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던 나도는 아주머니를 향해 침을 뱉는다. 침이 아주머니의 몸에 닿을 만큼 거리가 가깝지 않았고 퉤, 소리는 컸으나 아이의 몸 밖으로 나온 분비물은 적었다. 아이는 아주머니를 보지 않기 위하여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자세를 취하고 나는 침 뱉지 않아요, 주의를 준다.
주의를 주면서도 나는 아이의 당혹스러움을 읽는다. 아주머니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에서 나온 행동이기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거는 낯설고 불편한 상황에 대한 아이의 긴장된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침 뱉는 행위가 상대방을 향한 모독(모욕)이라는 것을 아직 아이는 모른다. 아이의 불편한 감정이 지금 최고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알아보지만 잠깐 스쳐가는 타인이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당황해서 허허, 웃으며 우리와 멀어진다.
“함나도, 이리로 와봐.”
내 굳은 표정이 신경 쓰이는지 왜,라고 묻는 나도가 조심스럽게 내 앞 식탁의자에 앉는다.
“네가 소야 말이야. 사람이잖아. 부끄러워요, 무서워요. 말을 해야지. 침을 뱉으면 어떻게 해. 사람에게 침 뱉는 거 아니야. 그건 아주 나쁜 행동이야. 앞으로 침 뱉을 거야, 안 뱉을 거야?”
“안 뱉어.”
“밖에서 사람들이 너한테 말 걸면 엄마를 주먹으로 때리잖아. 네가 무섭고 당황스럽고 어떻게 못하겠는 건 알겠는데 주먹질도 나쁜 행동이야. 때리는 건 안돼. 주먹질해? 안 해?”
“안 해”
“또 침 뱉거나 주먹질하면 엄마 진짜 화낼 거야.”
“엄마, 스노우(영상) 하고 싶어.”
“안 돼, 지금 잘 시간이잖아. 잘 준비해야지.”
“왜? 왜 안되는데. 아 짜증 나.”
“아빠, 엄마가 스노우 하지 마래. 아 짜증 나.”
“엄마, 나 간식.”
“이제 금방 밥 먹을 시간이야. 밥 먹고 줄게."
나도가 손바닥으로 내 배를 밀 듯이 친다.
“어허, 엄마가 주먹질 안 된다고 했는데?”
나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이거 주먹질 아니야, 보자기잖아.”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주먹질을 안 하니 (보자기질은 하더라도) 내 훈육은 효과가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