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구하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팔에는 저린 감이 있고 머리는 멍하다. 내 기력을 어딘가 다른 곳에 두고 온 듯하다. 일어나야지, 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일상적으로 수행해오던 일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행위가 되어 내 앞에 놓인다. 촉수, 촉수가 다가와 있는 걸까. 미끈거리는 촉감으로 내 다리를 붙들고 있는 걸까.
어둠에 잡힌 사람들은 몸은 현실에 있더라도 정신은 다른 세계에 속해있다. 어두운 구덩이 안 공포와 두려움이 실재하는 곳. 이중 메타포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이혼의 고통을 겪고 있는 중년 남성 화가는 폐소 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전 인생에 영향을 주던 사건 앞에 섰다. 어린 시절에 구하지 못한 소녀를 이번에는 구해야 한다. 깊은 상실의 경험을 극복해야 한다. 공포, 불안은 실재적이다. 폭풍 같은 감정에 휩쓸려 화가는 현실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합하는(상징적인 의미에서) 소년의 성장기로 읽혔다면 <기사단장 죽이기>는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분을 죽이고 희생과 시련의 길을 통과하는 중년의 성숙, 회복, 통합의 이야기로 읽었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대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기. ‘나’라는 자아 한 부분을 놓고 살고 있는 듯한 시기.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내가 인식하는 세계, 혹은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를 놓아야 하는 시기. 시련을 동반한 정화의 과정을 통과하는 시기. 성숙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내 발목에 걸리면 나는 앉아서 손톱을 자른다. 손톱은 촉수처럼 잘려나간다.(육체에는 육체의 법이 있으니) 끈적끈적하게 묻어오는 젤리 같은 촉수, 거머리처럼 붙어서 사람의 생기를 뽑아먹는 존재들.
당신 안에서, 당신이 하는 올바른 생각을 붙들어 하나하나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몸집을 불려 나가는 것. 그것이 이중 메타포입니다.
어서, 뭔가 떠올려봐. 손으로 만질 수 있는걸. 곧장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걸.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일부를 죽이는 것. 이것이 타인의 구원과 연결되며, 타인을 구하려는 노력은 자신으로 향하는 길과 닿아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울림이 큰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