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들의 사랑

사노 요코 <자식이 뭐라고> 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by 북남북녀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자식이 뭐라고>는 사노 요코 사후 아들 겐이 발견했다.(“노트에 메모처럼 쓴 글이 아니라 상당한 매수의 원고지에 사노 요코의 글씨가 하나하나 채워져 있었다.”) 자신에 대해 엄마인 사노 요코가 기록한 원고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아들 겐은 무섭다, 고 한다. 모든 행에 과장과 허풍이 어른거린다고. 하지만 자신이 본 과장과 허풍이 그녀 안에서는 모두 진실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유아시절부터 반항기 어린 10대까지 사노 요코 아들 겐의 짤막한 에피소드들. 이 짤막한 에피소드 속에 사랑, 우정, 질투, 배려, 성장, 죽음, 인생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아들 겐을 바라보는 엄마 사노 요코의 근심과 애정까지.


겐이 여섯 살 때 짝사랑하는 여자아이가 집에 놀러 왔다. 여자아이를 신경 쓰기보다는 집안을 뛰어다니기만 하는 아들 겐을 보며 ‘아들에겐 그녀를 기쁘게 할 만한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쓰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여자아이가 돌아간 후 “엄마 그거 알아? 아까 xx가 베란다에서 계속 바깥쪽 보던 거. 오랫동안 보던데, xx는 무슨 생각 했을까?”라는 물음을 들은 후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는 아들의 모습에 한 인간으로서 아들을 신뢰하고 싶어 졌다고 쓴다.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타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불행한 가정의 녀석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 안 해.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라고 아들이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듣고 몸속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라고도 쓴다. 이혼 가정이라는 아들 위에 드리운 그늘을 엄마인 사노 요코는 보고 있었을 것이기에.


사노 요코의 글을 읽은 낯선 아줌마가 길거리에서 아는 척을 한 이후 10대 겐은 엄마에게 자신의 얘기는 쓰지 말라고 화를 낸다. 사노 요코는 마지못해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만 발표하지 않았을 뿐 그녀는 아들에 대한 기록을 상당한 분량으로 남겨놓았다. (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 이토록 반짝반짝한 존재들을. 흘러나오는 신선한 말들을. 파닥파닥 요동치는 생명을)


엄마인 사노 요코가 모르는 더 즐겁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추억이 있으니까 이제 멋대로 쓰기 바란다, 는 아들 겐.


기록할 수밖에 없던 엄마 사노 요코.

할 말은 많지만 멋대로 쓰기 바란다, 는 겐. ‘사랑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더라도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진실과는 다르더라도 이것이 당신의 진실이라면 받아들인다는. 내 진실과는 다른 내 이야기라도.


<다정한 서술자>의 저자 올가 토카르추크는 인간은 하나의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각자의 환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묻는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동일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진실을 품는 이들)


인간이 서로에게 환영으로서만 존재한다면, 환영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 아닐까. 내 진실과 당신의 진실이 매일 매시간 어긋나더라도(‘하나’를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고, 당신이기에 내 옆에 두고 싶다는.


오늘 있는 환영들의 다툼은 함께하기 위해 애쓴 부산물일 뿐일지도. 조금만 더 다정하기를. 어차피 환영이라면, 서로의 진실이 닿기 어렵다면.


다정함은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바라볼 때 구현된다.

철학자들이 꿈꾸던 우누스 문두스, 그 하나의 세계는 과연 존재할까?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서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위대하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우주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실제로는 각자의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문학의 우주는 하나라는 것, 즉 인류의 경험이 하나로 통합된 공동의 심리적 실체인 우누스 문두스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우누스 문두스:unus mundus. 라틴어로 '하나의 우주, ' '통일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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