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라는 역사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by 북남북녀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138p)


자해의 다른 말인가.

사라지고 싶은, 분출해서 터트리고 싶은, 파괴하고 싶은, 그래서 자유롭고 싶은 욕망.

(그런 것은 불가능해 되돌아오는 중얼거림)


작아지는 꿈을 꾼다. 원하는 바는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인데 꿈에서도 투명 인간은 되지 않는다. 환하게 보이는 작은 사람이 되어 몸 둘 바를 모르며 길가에 서있다. 흔들리는 눈동자, 두근대는 심장, 두리번거리는 몸짓.


도망가려고 시도하지만(무엇으로부터) 움직이지 못한다. 마비된 듯 서서 주변만 살필 뿐이다. (곧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심)


자기라는 역사를 들여다볼 때 긍지로 쌓아 올려진 이가 있을까.

긍지, 긍정, 행복, 즐거움, 따사로움, 자신감 뭐 그런 것들로.


문학교수이자 저명한 작가인(2022년 노벨 문학상)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다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작가가 적어놓은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에서 떠올려지는 내 속의 숨겨진 이미지들로.


훗날 몇몇 남자들에게 나는 “내가 열두 살쯤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이 문장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은 그들을 무척 사랑했다는 의미였다.(26p)


자해의 일종인가 나는 또 생각한다.

(괜찮아 괜찮아 말해지는 쿨함 속에 새겨지는 실망감)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근대는 심장이 아니라 평온하고 고요한 심장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은 흔들리는 눈동자와 연결된다. 강력한 통제와 끌어올리는 종교적 고양감은 부작용이다.


그 뒤 여름 내내 있었던 모든 일들은 우리의 천박함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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